내암 정인홍 400주기 추모 정맥고풍변 기념비 건립
합천의 대표 인물 “내암 정인홍” 선생의 400주기를 맞아, 내암이 쓴 명문(名文) 정맥고풍변(正脈高風辨)이 기념비로 건립된다.
건립일은 오는 10월26일 목요일 오전11시, 합천 가야면에 위치한 내암기념관(가야산로1135)이다. 주관은 서산정씨서령부원군종회(회장 정외출), 주최는 서산정씨대종회(회장 정성완), 후원은 남명선생 선양회(회장 조찬용)이다.
이번 ‘의병대장·영의정 내암 정인홍 400주기 추모 정맥고풍변(正脈高風辨) 기념비 건립’은, 내암 15세손인 정외출(鄭外出, 1950년생) ㈜미스틱타이 대표가 주관하여 제막식을 가지게 되었다. 정대표는 “올해가 내암 할아버지 서거 400년이 되는 해이다. 그 원통함을 풀어드리고, 300년 동안 왜곡 폄하된 내암 선조님을 바르게 알려, 진실을 정립하기 위해 미력한 힘을 보탰다. 제막식 때 뜻있는 분들이 많이들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고 했다.
이날 내암 문인(門人)인 고대 정경운, 겸재 하홍도, 감수재 박여량, 추담 윤선, 남음 강린 후손들과 정맥고풍변을 보존한 진주 사곡마을 송정 하수일 후손 등도 이날 참석하여, 내암 선생 후손들과 400년 동안 쌓인 회포(懷抱)도 풀 예정이다. 이번 정맥고풍변 기념비 건립은, 조찬용 남명선생 선양회장이 보이지 않은 역할을 했다. 조회장은 “이번 정맥고풍변 기념비 건립에 지방비를 일부 지원받으려고 노력했으나, 여의치 않았다.”며 그간의 소회를 전했다.
조 회장의 설명에 의하면, 『정맥고풍변(正脈高風辨)은 서령부원군 내암 정인홍(瑞寧府院君 來庵 鄭仁弘, 1536~1623) 선생이 71세 때인 1606년(선조39) 가을에 지었다. 내암의 정치철학과 추구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유려(流麗)한 명문(名文)이다. 400년 전 이귀(李貴) 등 집권 서인 세력들에 의해 비통하게 임종(臨終)한 내암 선생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가야산 해인사 고을에 정맥고풍변 기념비 건립은, 정의와 용기가 역사를 발전시킨다는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므로 의미가 크다.
내암은 “퇴계(退溪)가 정맥의 지위에 도달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실낱만큼이라도 이르지 못했는데, 한강(寒崗)이 퇴계를 정맥이라고 칭한다면 아부한 것이거나, 분수를 모르고 인륜을 저버린 것이다. 사람을 논(論)하려면 그 사람의 욕망이 다한 곳을 보라고 했다.” 계해정변(癸亥政變, 1623년)으로 ‘임금 광해가 오랑캐 청나라와 화친했다.’는 주요 이유로 폐위된 뒤, 퇴계 문인들을 비롯한 서인(西人, 노론) 세력과 사이비 남명학파 후예들까지 이긴 자들 편에서 정맥고풍변과 함께 맥락이 같은 신해상차(辛亥上箚, 소위 회퇴변척소)를 먹잇감으로 삼아 족보 문집 묘갈명 등에서 내암을 난도질했다.
250년 뒤 매천 황현(梅泉 黃玹)은 “오늘날 유자(儒者)라는 자들은 지금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예기치 않은 변고(變故)를 만나자 아첨이나 하고 납작 엎드려 있을 뿐 임진왜란 때 도적들에게 항거하며 의병을 일으켰던 정인홍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한다. 대대로 세도를 누린 집안에서 심성(心性)을 말하고, 이기(理氣) 분석에 치중하는 학문(學文, 성리학)은 과연 무엇을 귀하게 여기자는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뒤이어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는 내암을 을지문덕 이순신 최영과 함께 ‘4대 영웅’으로 평가했다. 정맥고풍변 재탄생은 긴 세월 왜곡 폄훼와 서러움을 딛고 내암 선생이 역사의 진실 속으로 웅비하는 것이기에 참으로 뜻깊다.
내암은 1908년(순종1) 4월 한효순 윤휴 목내선 이현일 최석항 김일경 이광좌 등과 신원(伸冤)까지 됐지만, 아직도 내암에게 덧씌우진 가짜 뉴스를 진실인양 믿으며 내암을 이단시(異端視)하고 있다.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의 고제(高弟)인 내암을 덕천서원에 배향하지 못하고 있는 비루한 현실이지만, 이번 정맥고풍변 기념비 건립으로 내암 선생은 역사의 진실 속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고 자평했다. /박황규 기자
*참고: 정인홍이 지은 정맥고풍변(正脈高風辨) 원문해설 ==> https://blog.naver.com/antlsguraud/221367890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