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 제4회 수려한 합천영화제 관객상 ‘인형 이야기’… 그리고 감독의 이야기
지난 19일 개막을 시작으로 23일까지 5일간의 수려한 합천영화제 여정이 끝났다. 1358명이 영화관을 찾았고 평균 좌석 점유율은 58%를 기록했다. 관객들을 대표해 전국에서 선발된 관객심사단 9인은 상영된 36편의 경쟁 작품 중 ‘인형 이야기’를 관객상으로 선정했다. 인형 이야기는 선녀와 나무꾼 그리고 요괴 인형 등을 스톱 모션 기법으로 촬영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다. 러닝타임 14분 25초, 총 1만 프레임 이상이 사용됐고 모든 프레임은 감독의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관객들에게 최고의 영화로 인정받은 ‘인영 이야기’를 만든 박세홍 감독을 만나 그의 영화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관객상을 받았다. 소감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수려한 합천영화제에 나의 영화가 상영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관객들 모두 개인 취향이 있을 텐데 쟁쟁한 경쟁 작품 중에서 많은 분들이 ‘인형 이야기’를 선택해 주신 건 정말 대단한 영광이다. 사실 영화제 기간 동안 나야말로 좋은 작품들을 관람하며 큰 감동을 받았다. 영화적으로 부족한 나에게 귀중한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Q. ‘인형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 해 달라
인형 이야기는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소재가 주는 판타지와 다큐멘터리 요소가 섞인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다. 스톱 모션은 말 그대로 정지한 장면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이다. 토이 스토리라는 영화가 장난감과 어린이가 말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면 인형 이야기는 스톱 모션과 인형의 세계관이 담겼다고 보면 된다. 현실적으로 보면 애니메이션 영화 시장에 도전하는 나의 생각과 경험들이 표현된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선녀, 나무꾼, 요괴, 뼈대 등 4개의 캐릭터는 사실 나를 투영하고 있다.
Q. 캐릭터에 감독이 투영됐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선녀는 희망을 가져보려는 나, 나무꾼은 우유부단한 나, 요괴는 ‘그래도 해보자’라는 긍정적인 나, 뼈대 인형은 사실 샘플로 만들었던 건데 독립 영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나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선녀가 ‘거위의 꿈’을 부르는데 그 장면도 ‘희망’을 가지고 싶은 나를 투영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Q. 고전 캐릭터와 배경을 사용한 이유는?
사실 SF 혹은 스릴러 장르의 현대물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인형 제작부터 감독, 촬영, 편집을 혼자 해야 했던 작업 환경에서 그런 현대적 배경을 미니어처로 제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현실적 문제가 있어서 초가집이 등장하는 고전물이 된 것이지만 판타지라는 공감 지점을 포기할 수 없었고 고민 끝에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동화를 인용했다. 나름 현실 타파한 것이다.
Q. 총 제작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약 1년 정도 걸렸다. 초기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거쳐 인형 제작 3개월, 촬영 3개월, 후반 작업 3개월 정도 걸렸다. 공동 작업 없이 만든 스톱 모션 영화 치고는 제작 기간이 생각보다 줄긴 했지만 모든 작업을 혼자 하다 보니 그만큼 인형 제작 기간도 짧아져서 다양한 표정을 만들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표정의 다양성이 부족했지만 성우 분들이 캐릭터를 잘 살려 주셔서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Q. 러닝 타임이 14분이 넘는다. 제작 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프레임(정지 화면 단위) 마다 촬영 장면을 가다듬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실리콘 재질로 만든 인형을 고정해주는 나사가 헐거워져 정지 화면 담기가 힘들었다. 스톱 모션이란 것이 정지 화면을 이용한 기법인데 정작 정지 화면을 담기가 힘들어서 난감했다. 조이면 풀어지고 자세를 만들면 쓰러지는 인형들이 너무 야속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형이 4개로 보이지만 표정을 만들기 위해서 추가로 만든 인형만 30개가 넘는다.
Q. 가장 애쓴 장면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선녀가 판소리 버전으로 ‘거위의 꿈’을 부르는 장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스톱 모션으로 노래 부르는 장면을 연출하는 건 힘든 작업이었다. 장면을 상상하고 표정을 콘티 형식으로 그려가며 노래를 듣고 또 들었는데 아마 천 번도 넘게 들었던 것 같다. 3분 정도 길이의 노래 부르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두 달 정도 시간이 걸렸다.
Q. 감독도 영화에 출연했는데 어떤 의도가 담긴 것인가?
(…) 처음엔 배우를 쓸 생각이었다. 배우 섭외 전에 내가 먼저 캠코더를 놓고 혼자 찍어 봤는데 결국 그게 쓰였다. 결과적인 얘기지만 다큐멘터리 요소도 살리고 싶었는데 내가 등장하는 장면이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을 살린 것 같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국어책 읽듯 대사를 표현한 것도 의도적인 ‘발 연기(?)’였다. 내가 너무 연기를 잘했으면 인형 캐릭터들이 잘 살지 않았을 것 같다.
위트가 넘치면서도 진중하고, 순박하면서도 솔직한 인상의 박 감독은 영화계에 늦게 데뷔했다. 인형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서 일을 해오던 그에게서 감독 재능이 발현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제4회 수려한 합천영화제에서 관객상에 이어 특별상까지 수상하며 2관왕 영화감독이 되어있다. 그의 영화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Q. 영화감독은 언제 된 건가?
영화감독이라는 확정된 단어가 나에게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내 나이가 지금 51살이다. 영화계에 발을 들인 건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인형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뒤늦게 독립 영화 작업을 어깨 너머로 경험하게 되었고 직접 촬영해 보고 싶어서 무작정 도전했었다. 주변에선 중년의 무모한 도전이라며 한심하게 바라보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건 해야만 했다. 주업으로 애니메이션 인형을 만들며 나 홀로 영화 작업을 한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난 완전체의 영화감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Q.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자신의 작품을 볼 때 무엇을 느끼나?
큰 스크린을 앞에 두고 관객 분들과 내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때론 부끄럽기도 하고 반응이 좋을 땐 흥분되기도 한다. 무엇을 느낀다고 말하기 보단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다.
Q. ‘인형 이야기‘, 어디서 볼 수 있나? 향후 계획도 알려 달라.
독립 영화가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작년에 만든 작품인데 2년간은 출품이 가능해 다양한 영화제를 통해 대중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그 이후는 OTT(영화, TV 방영 프로그램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형태 배급을 추진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스톱 모션 제작 활동을 이어나가며 전례동화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시리즈를 만드는 게 목표다.
Q. 영화를 사랑하는 합천군과 군민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한다.
수려한 합천영화제는 규모가 꽤 큰 독립 영화제다. 한국 영화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테마파크에서 열리는 것도 의미가 크다. 합천에서 이런 좋은 영화제를 열어주셔서 감사드리고 특히 인형 이야기를 관람해주신 지역민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박 감독 자신을 영화적으로 평가한다면?
난감한 질문인데…‘나는 스톱 모션을 제작하지만 멈춰있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언젠간 정지하겠지만…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