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 남계서원 – 노덕경 수필가
꽃 피는 봄이면 문학단체들이 소재를 찾아 문학기행을 간다. 대구, 경북의 유네스코 등재된 5개의 서원인 소수, 도산, 병산, 옥산, 도동서원을 한두 번 돌아보았고, 올해는 경남(부산, 울산포함)에 하나 있는 함양 남계서원(灆溪書院)을 찾았다.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유림들에 의해 건립된 대표적인 사립 성리학 교육기관이다. 한국의 670여 개 서원의 대표적인 9개 서원(위의 5개와 남계, 필암, 무성, 돈암)이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남계서원은 경남 함양군 수동면에 있다. 1552년(명종 7)에 개암. 강익을 비롯한 당시 군수 윤 확과 지역의 유학자들이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선생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성리학 교육시설이다. 정여창 선생은 김종직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연산군을 가르친 스승이다.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동방오현’으로 불리며 문묘에 종신된 ‘해동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1566년(명종 21)에 왕이 ‘남계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남계는 서원 앞에 흐르는 하천 이름인데, 경남지역 의병활동으로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왜군들에 의해 불탔다. 전쟁이 끝나고 인근 나촌(羅村)으로 옮겨졌다가 1603년에 복원, 1612년에 현재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서원은 남서향 경사지에 위치하여 앞으로 흐르는 강과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정문에 홍살문이 있다. 넓은 마당을 지나, 풍영루가 있는데, 교류와 유식 여백의 공간인 누마루가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양쪽에 연못이 음양의 이치에 따라 만들었고, 유생들의 숙식 공간으로 동재 ‘양정재’ 서재 ‘보인재’가 있다
계단 위에 강당인 명성재가 전면 4칸, 측면 2칸으로 한국의 서원 건축의 전형적인 배치 형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는데, 국공립인 향교와 전학후묘(典學後廟)의 앞에는 유생들 강학 영역, 뒤는 선현들의 제향 영역이 전형적인 건축 배치 양식이다. ‘명성재’ 옆에 강학과 관련 서적과 목판, 등을 보관하던 곳이다.
성리학자들은 교육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서원을 설치하여 그들이 존경하는 지역 인물을 제향 함으로써 후세에 본보기를 제시하고자 했다. 사당에는 정여창 위패를 가운데 모시고,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를 모셨다.
인접한 개평마을에서 태어난 ‘일두’ 정여창 선생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요, 성리학의 대가로 경사(經史)에 통달한 분이다. ‘일두’정여창 선생이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고, 다시 1504년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고난을 겪은 인물이지만 성리학에서 5현으로 칭송된 인물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도학자인, 성리학자로 이기론, 심성론, 선악 천리론 등의 사상을 기초로 소학과 가례의 실천적 효행에 모범을 보였고 부모의 효행을 근본으로 삼았다.
선생의 고택을 돌아보았다. 함양 개평마을은 전통적인 한옥마을로 14세기에 경주 김씨, 하동 정씨가 터를 잡았고, 15세기에 풍천 노 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데 현재는 대부분 풍천 노 씨와 하동 정씨가 살고 있다.
마을에는 530년 전통의 가양주인 지리산 ‘솔송주’가 유명하다. 술이 투명하고 솔의 향이 진하여 객들의 입에 짝짝 붙는 술이다. 정여창 고택의 솟을대문은 충효의 가문을 나타내는 임금이 하사한, 홍살문에 5개의 정려 편액이 걸려있다. 출입하는 사람들의 몸가짐과 경의를 표하라는 징표다.
‘일두’고택을 지나가다, 나의 시조 수(穗) 할아버지의 아들 9형제 중, 해(垓)는 광주 백, 오(塢)는 교하 백, 지(地)는 풍천 백, 세 번째 할아버지 후손들의 터를 잡고 집성촌을 이룬 대종가, 참판 댁의 가옥이 잘 보존하고 있어 일가들의 집성촌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함양은 지리산 줄기의 산새와 물이 좋아 선비 문화탐방로가 유명하다. 아름다운 경관과 충절의 선비고을답게 정자와 누각이 100여 개 세워져 있단다. 영남 유생들이 한양 길에 덕유산 육십령을 넘기 전에 산새와 맑은 물이 흐르고 시원한 너럭바위에서 잠시 머물며 주먹밥을 먹었던 곳이다.
정여창 선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농월정은 400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정자다. 후세에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바위에 ‘지족당 장구지소’라 글을 새겨 놓았다. 거연정은 남강이 흐르는 봉전마을 앞 하천 굴곡이 심한 기암절벽에 세워졌고, 군자정은 전국의 정자 계곡을 대표하는 곳이며 암반 위에 깎아 세운 전통, 정자 건축물의 기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동호정은 ‘남천 강’ 담소 중의 하나인 화려하고 하늘을 나는 자태를 뽐낸다.
문학기행은 해가 서산에 넘어갈 때쯤 마무리가 되었다. 소재를 찾는 빠듯한 일정으로 피곤함이 몰려왔다. 뒤풀이로 시원한 소맥 한 잔으로 목을 적시고, 대구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