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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하고 – 이호석 수필가

지난 14일 오후, 지역의 소극장 합천시네마에서 ‘서울의 봄’ 영화를 관람하였다. 이 영화를 제작한 사람들이나 나는 당시의 현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가 얼마나 사실에 가깝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를 본 후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한다면 관객들의 흥미 위주로 만들어 돈벌이에 목적을 두었거나 아니면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영화처럼 보였다. 왜 그렇게 보였을까?
12·12사태는 이 사건 두어 달 전인 10월 26일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따라 일어난 것이다.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시해범인 김재규와 당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장군이 평소 가까이 지냈다는 사실과 시해 사건 당일 그 시간에 사건 현장 가까운 곳에 정 장군이 있었다는 것 등으로 이 사건에 연관성 의혹이 떠오르면서 합동수사본부에서 이를 수사하기 위해 참모총장을 소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본 영화 앞부분에 이런 과정을 간략하게 자막처리 하거나 언급을 해야 관람자들이 전체 흐름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은 빼버리고12·12 사태만 크게 부각시키면서 그것도 과장된 내용으로 관람자들의 흥미를 고조 시키고, 소위 신군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게 하는 편향된 영화였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평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차제에 12.12사태 이후 지금까지 내가 혼란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들을 기술해 본다. 먼저 그 당시 이 사태가 없었으면 과연 ‘서울의 봄’이 평화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이어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1960년 4·19 의거로 자유당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무지한 정치인들이 맨날 싸움질만 하면서 나라를 안정시키지 못해 결국 5·16 군사 혁명을 불러왔고, 지금도 국민의 대표라는 정치인들은 온갖 특혜로 자기들의 배만 불리고 정권 쟁취에만 몰두하면서 국민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또 온갖 권모술수와 거짓으로 국민을 불안하게만 하고 있다. 이렇게 무능한 저질 정치인들이 10·26과 같은 국가 큰 혼란이 닥쳤을 때 과연 국가 질서를 바로잡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의 소견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로 보인다.
12·12사태의 얘기가 나오면 나는 달리 생각하는 분이 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잠시 계엄사령관을 지낸 정승화 장군이다. 이 사태 때 과연 그분은 어떠한 마음이었고, 또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항상 궁금하던 터라 이 영화에서나마 그의 역할을 보고 싶었다.
내가 정승화 장군을 처음 만난 것은 20대 초반 육군 부사관으로 군 복무할 때였다. 1969년 경북 영천에 있던 육군 부관학교에서 하사로 임용되어 그곳에서 일 년 반쯤 복무하고 있을 때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성 바로 아래 육군종합행정학교가 창립되면서 전국에 흩어져 있던 육군 경리학교를 비롯하여 군수, 헌병, 부관, 정훈, 정보학교 등 육군의 모든 행정병과 학교가 이곳으로 통합되었다. 그때 초대 교장이 바로 정승화 장군(당시는 소장)이었다.
육군부관학교에서 복무하던 나는 전 장병들과 함께 이동하여 현지에 도착하니 허허벌판에 군용 텐트 서너 동이 쳐져 있고, 그중 한 텐트 앞에 별 두 개가 그려진 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바로 그곳이 정승화 소장이 근무하는 지휘부 사무실이었다. 한편에서는 불도저 몇 대가 넓은 들판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한창 땅을 고르고 있었고, 또 한편에서는 2층 건물 여러 동을 막 짓기 시작하였다.
일부 장교들과 사병들은 모두 한동안 텐트 생활을 하면서 곳곳에 나무와 잔디를 심는 등 환경 정비 작업에 매달렸다. 작업 진척이 늦어지자 정승화 장군도 수시로 한두 시간씩 틈을 내어 직접 돌을 날랐다. 장병들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그 모습과 평소 온화하고 점잖은 모습을 보면서 항상 참신한 선비와 같은 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존경하였다. 나는 이분 밑에서 중사로 진급하였고 공로 표창도 받았다.
내가 전역을 하고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났다. 그 자체에도 놀랐지만, 수사 발표를 할 때 더욱 놀란 것은 내가 존경하던 정승화 장군이 어떤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2여 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모신 정승화 장군은 김재규와 사건을 공모하여 대통령을 시해하고 그 후 더 큰 야망을 품을 그런 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평소 김재규와 가깝게 지냈다는 것과 사건 당일 현장 가까이 있었다는 것, 또 계엄사령관이 된 후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를 즉각 수사하도록 조처하지 않았던 점 등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김재규가 혼자 생각으로 감히 대통령을 시해하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등이 나를 계속 혼란스럽게 하였다.
김재규는 어떤 이유에서 건 당시 다수 국민의 존경을 받던 대통령을 시해한 큰 죄인이다. 전통적 정서라면 삼대를 멸해야 할 대 역적 죄인임에도 이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은 일부 정치권의 분위기와 그 사건에 동조 또는 공모 혐의가 있는 사람을 소환 수사하는 과정에 일어난 사태만 너무 과장하고 편향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도 혼란스럽다.
모든 역사는 편견과 이념을 버리고 사실대로 기록되고 전수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기반이 바로 서고 후대들이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12·12사태 관련자들은 40여 년이 넘게 많은 비난과 여러 차례의 수사를 받았고 일부 처벌까지 받았다. 지금에 와서 어떤 목적으로 이런 영화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흥미를 불러 일으켜 돈벌이를 하는 것도 좋지만, 과장된 내용으로 국민 단합을 저해하는 행위가 아닌가 싶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