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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오늘은 어떻게 왔는가 – 권길홍 수필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합천댐 주변은 너무 아름답다. 황매산 아래의 모산재를 지나면서 산골짜기를 지나고 구름재(아스라이 바라보이는 산들로 펼쳐진 풍경이 마치 구름을 넘어 아득히 보이는 아름다운 고개라 구름재라 붙여보았다.)를 지나서 올라서면 툭 터진 넓은 대병댐의 넓은 호수가 보이고 호수 주변에는 곳곳이 볼거리고 멋있는 곳이다. 봄에는 벚꽃이 울창하게 피어 굴처럼 길이 만들어져 이 길을 따라 호수를 빙 돌아 차를 타거나 걸어서 일주하면 그 아름다움이 손에 잡힐 듯 우리들의 마음에도 추억을 길게 남긴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는 이 합천댐을 즐기며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지만 이 댐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의 부모세대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아파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이 공사를 기획하고 추진했던 사람들이 들었던 비난은 이들을 고민하게 만들고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을 정도로 어려워했으리라 짐작을 한다.
우리가 사는 이 합천댐을 건설하기 위해 몇 군데의 수몰지구가 생기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강제이주를 당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합천 사람들은 이 댐의 물을 식수나 농업용수로 이용하지만 부산시민들까지도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하려 할 정도로 합천댐은 중요한 우리 사회의 자산이 되었다. 이런 사회의 중요자산인 댐을 설치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떠나고 자신이 평생 정성을 들여 갈고 닦은 전답을 내어주고 고향을 떠나면서 엄청난 슬픔과 괴로움을 당했다. 지금 댐이 있는 대병면 소재지 일부는 과거에 댐을 만들면서 살았던 주민들을 이주시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루도록 한 곳이다. 지금은 호수가 되었지만 당시에 호수 아래에 잠긴 그 땅을 기반으로 하여 논밭을 갈고 마을을 이루어 살던 농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봉산면이나 묘산면의 일부지역도 앞에서 말한 대병면처럼 수몰지구가 되어 망향의 동산을 설치해 기념비까지 세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땀으로 일구어내었던 논밭을 내어주고 떠나게 되었던 지역이다. 이 봉산이나 묘산 지역의 주민들도 농사를 짓거나 생업의 터전으로 살던 땅을 호수에 내어주고 하루아침에 고향을 등지고 이주하여 다른 곳으로 이사가거나 심하게는 타지방으로 떠나야 했다.
마찬가지로 울산이 세계적인 공업도시가 된 것도 그 당시를 살았던 선대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 정도까지라도 발전한 공업국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주민이 발생했는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는 모른 체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공단을 조성할 때부터 나중에 공해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기업주부터 전 시민이 마음을 모으고 매달렸던 사실까지도 오늘을 사는 우리는 마음속으로 기억하며 지난 역사에 대한 아픔에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울산공단이라는 세계적인 공업지구가 생기기까지는 숱한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 아픔과 고통을 겪고 나서야 이룩된 결과물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제대로 우리의 근현대 역사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우리가 왜 지난 과거의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땅의 변화하는 과정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그 시절에 아파했던 선대들에 대해서 모른 체하고,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번영에 대해서 누리려고만 한다면 진정 이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자주 인용하는 단재 신채호선생의 말씀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는데! 우리 민족의 지난 시절에 대한 아프고 괴로워 했던 시절의 치열한 성찰은 빼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오늘만 편안하게 지내겠다. 바른 자세일까?
정말 울산공단의 건설은 이 땅의 부흥을 위한 선각자들과 울산주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산하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고난과 아픔을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70여 년 전에 벌어진 6.25 남침으로 나라가 쑥밭이 되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이와는 다른 아픔을 안고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어제까지는 논이었고 밭이라 농경지였던 땅이 오늘은 공장이 들어서고 도로가 되는 그 기적을 보았다. 또 멀쩡하게 가족들끼리 잘 살던 곳이고 동네사람들과 오손도손 정답게 살아가던 고향땅이 어느 순간에는 개발지로 바뀌면서 공장이 들어서게 되어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은 시대였고 그러한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이겨낸 시절의 사람들이다. 민족이니 나라라는 불멸의 가치는 후다닥 만들어지거나 대충 세워지는 게 아니라 크건 작건 간에 자신의 말 못 할 아픔을 마음 저 깊은 곳에 쟁여놓으며 쌓아놓았던 사람들의 살아왔던 역사로서 그들이 이룩한 결과였다.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는 역사를 만들어 왔고 그런 역사를 만들기 위해 묵묵히 견디어 온 세대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장소가 바로 이런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