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기관 ‘저출산 쓰나미’
김경숙
논설위원
인구의 감소로 인한 소규모 학교의 증가는 농산어촌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울의 도심에서도 시작되었다고 조선일보(2016.7.8. 교육기관 ‘저출산 쓰나미’)가 그 심각성을 보도했으나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던 일이다. 방송언론은 혁신학교를 교육의 메카처럼 보도했으나 서울의 남한산 초등학교를 기점으로 시작된 혁신학교는 배움수업을 강조한 사토마나부의 교육이론과 북유럽 교육을 벤치마킹하는 등, 경쟁을 배제하고 평등교육을 내세운 소규모학교 살리기의 자구책으로 시작했다. 농산어촌의 소규모학교 현상은 20여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며 현재 합천군의 20여개 초등학교는 1개 학교를 제외하고 모두 소규모 학교로 분류되어 있다. 앞으로 세 학교가 통폐합 예정으로 되어있고 조만간 군 단위에는 5개 정도의 초등학교만 생존하고 모두 통폐합 될 것이라는 어두운 예측을 하기도 하는데 시기와 양상이 다를 뿐 도심이라고 비켜가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40세 이하의 세대는 ‘둘만 낳아 잘기르자’ ‘하나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등, 인구감소를 위한 계몽적 구호 아래 태어나 성장한 세대이다. 그 세대들 중 결혼을 거부하거나 자녀출산을 거부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하던 부모들도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로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집을 마련하기 어렵고, 한명의 아이를 키우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차라리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자조적인 판단 때문이다. 또 출산의 문제도 예전과 달리 시부모나 친정부모 세대들 모두 ‘둘은 되어야지’ 하던 것을 ‘하나 키우기도 저렇게 힘이 드는데 더 낳으라는 소리 못하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는 모양이다. 태어나자마자 몇백만원씩 지급하는 조리원비에서부터 각종 유아용품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면서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특히 맞벌이 가정에서는 아이 돌봄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유아 요가에서부터 각종 체험, 교육용 비품과 놀이용품, 고가의 장난감 등, 벅찬 비용을 감당할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안하면 그만’이라는 논리도 합당해보이지 않으므로 차라리 결혼이든 출산이든 안한다는 것이 그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들이다. 한겨레는 35세 미만 엄마 47%는 “경제부담에 둘째 포기한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16.7.11)
저출산의 쓰나미는 학교에만 몰려오는 것이 아니라 관련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산부인과와 기저귀, 분유, 장난감 등의 유아용품 회사를 비롯하여 이들의 성장과 함께 관련된 산업의 구매자와 수요자가 줄어들면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글로벌하게 해외로 눈을 돌리게 하는 인터넷 매장이 지금도 활성화되어 있으므로 국내의 문제를 해외에서 해결하거나 고퀄리티를 지향하며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고가의 브랜드를 활성화시키는 전략을 세우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래왔듯이 가장 치명적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사라지는 것은 학교임이 분명하다. 농산어촌은 한 군郡에 수십개의 학교가 이미 사라졌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미래에는 지금의 학교와는 양상이 다른 교육을 시행하게 될 것이고 영국에서 이미 시험을 하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의 맞춤형 수업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작은 학교가 어떤 변화를 맞을 지는 모르겠지만, 또 그때가 언제인지 알수는 없으나 비인간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정부가 교육 시스템을 어떤 방식으로 재정비 할 것인지 모르겠으나 안전하고 누구나 걱정없이 살게 되는 우리 사회의 정비가 더 필요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북유럽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직장근무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교대하여 아이를 돌보고 굳이 대학을 가지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대학은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고 학비가 없다는 것이 우리가 종종 전해듣는 복지국가로서의 위엄이다. 우리사회가 그렇게 되기는 요원한 일이며 저출산의 해법도 지금으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사회는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고 80년대 인구증가 억제를 위한 계몽은 먹혀들었으나 지금은 지역마다 서로 다른,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출산장려 계획과 지원이 공허하기 때문이다.
20여년 전부터 인구감소로 인해 농산어촌의 소규모 학교가 급증했을 때 복식학급을 주제로 한 연구시범학교(함양 대평초) 참관 시 ‘복식학급 일반화를 위한 좋은 연구’였다는 발표를 들으면서 “만약 서울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면 사회의 반응은 달라졌을 것이며 현행의 복식학급은 그 어떤 면에서도 ‘좋은’ 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던 내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복식학급은 학부모들의 반발로 인하여 학교가 통폐합되었고 당시 50여개의 초등학교는 지금 현재 13개로 축소되었으며 재적수가 당시의 한 학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학교가 수두룩하다. 저출산 쓰나미가 농산어촌의 초등학교에는 이미 20년 전에 밀려 온 셈인데 서울의 소규모 학교 발생에 따른 심각성에 대하여 조선일보는 거의 한 면을 할애했다. 묘한 심경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