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리 될 줄 알았다.

공원석
논설위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리 될 줄 알았어.” 이 글은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입니다. 얼마나 위트가 있었으면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유머를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짧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이 묘비명을 남긴 사람은 엄청나게 우유부단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얼핏은 가지게도 됩니다. 그러나 주인공인 조지 버나드 쇼는 누구보다도 인생을 매우 바쁘게 살다 간 사람입니다. 극작가 겸 소설가였던 그는 수필가, 비평가, 화가, 웅변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인생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묘비명을 왜 남겼을까요?
그의 눈에는 행복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우물쭈물 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대신해서라도 많은 이들이 능동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실수하며 보낸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인생보다 훨씬 존경스러울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유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에디슨이 실험을 구십 아홉 번을 실패한 후 백 번째로 성공을 거두자 제자가 “선생님, 구십 아홉 번이나 실패했습니다”라고 하니 에디슨이 “나는 구십 아홉 번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 구십 아홉 번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 대답과 맥을 같이합니다.
우리 인생은 참 바쁩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나 우물쭈물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환경이나 가능성을 핑계로 선택을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쳐 버리고난 뒤에야 허둥대며 스트레스에 빠지기가 일쑤입니다. 이를 가까이서 보면 순간들이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가 인생의 시간들입니다. 우물쭈물 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실수도 실패도 하나의 소득이라고 생각하면서 뭐라도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먼 훗날 새길 우리의 묘비명에는 행복한 말들로 가득 채울 수 있도록 우물쭈물 거리지 말고 행복을 만들어 가자고 권고해 봅니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충고해 줍니다. 이 묘비명은 누군가에게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 같은 경우를 넛지(nudge)효과(강요보다는 부드러운 방법으로 행동변화를 유도하자는 것)라고도 합니다.
또, 그에게는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밤새 집필 작업을 마치고 새벽녘에 잠이 든 조지 버나드 쇼의 방에 부인이 들어왔습니다. 부인이 원고를 읽고 나서 “당신의 글은 쓰레기 감이에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는 능청스럽게 “맞아, 하지만 일곱 번 교정한 다음에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겁니다”라고 대답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생은 퇴고기능이 없습니다. 인생은 다만 지나간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바르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재방송이 없는 연속극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올바르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함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영화 <빠삐용>의 꿈속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재판관들이 빠삐용을 둘러싸고 “너는 죄인이다”라고 집중 공격할 때에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온 것이지 죄가 있어 온 것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그때 재판관이 “너는 인생을 낭비한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내용들은 교육에서는 곱새기고 실천해야 할 과제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