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離別) – 김학구 그라운드골프합천동호회원
삽짝을 들어서면 부르는 이름, “복실이 엄마-” “그래요! 복실이 아빠 뭐하고 인제 오요.”하던 복실이 엄마를 오늘따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복실이 엄마가 오늘따라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목청이 작아서 들을 수 없을까요? 산 넘고 강 건너 산기슭 골 깊어 듣지 못할까요? 밤 낮이 없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던 복실이 엄마는 지난 달 스물이틀날 더 좋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이젠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허전할 수가 없습니다.
남송 시대 성리학 대가 주희 선생께서는 ‘십회훈(十悔訓)’에 “불친가족소후회(不親家族 疎後悔)”라고 하셨습니다. 가족에게 친절히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복실이 엄마”라고 부를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를 왜 몰랐을까요?
복실이 엄마와 이별을 경험하면서 살아 있을 때 많은 일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귀하고 소중한 인연이 얼마나 든든한 반석인지를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잘못된 일에 대한 생각으로 뻥 뚫린 가슴속으로 시린 바람이 휙휙~ 몰아쳐 댑니다. 아내와 함께했던 지난 세월이 주마등같이 지나갑니다. 소중한 인연을, 든든한 동반자를 멀리 보내고 난 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인연으로 내 앞에 온 그 사람. 크고 작은 일상 속에 힘들고 행복했던 일들이 화살촉처럼 빠르다는 것을 또 실감하는 어리석은 하루가 또 지나갑니다.
부엌 문 열고 혼자 말합니다. “복실이 엄마 어디 있어” 식탁에 먹다 남은 김치 사발이 댕그랑 소리칩니다. “이제는 당신이 찾아 먹어야지”
딸 셋을 내리 낳터니 사시사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아들을 낳아야 된다고 민간요법으로 여자는 육모초를 다려 먹어야 아들을 얻는다고 뒷산 육모초를 여러 짐이나 먹었고 피로가 풀린 새벽시간에 관계를 가져야 아들을 얻는다고 하여 초저녁에는 생각이 굴뚝 같아도 옆에도 못 오게 했던 복실이 엄마. 여자는 고기를 먹지 말고 채식 위주로 하고 남자는 육식을 먹어야 된다고 하여 먹기 싫은 고기를 많이 먹어도 별 효험이 없자 어머님을 졸라 옆집 외삼촌이 부산 영도에서 화신당 한의원을 하는데 그 집에 한약을 지어 먹으면 아들 낳는다는 소문이 자자하니 약을 사다 달라 애걸복걸 매달리던 복실이 엄마. 복실이 엄마는 마음에 없는 말까지 한다, 우리 친정 엄마가 딸을 많이 낳아서 나도 딸을 많이 낳는가 보다 하며 딸 셋을 낳고 아이는 돌보지 않고 저녁 내내 자지 않고 울고 있었던 복실이 엄마. 아들을 낳았다고 잠도 자지 않고 아이 덮은 홑이불을 시도 때도 없이 들쳐보던 복실이 엄마.
지금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조상을 섬겨야 복을 받는다고 아이들에게 숭조의 이념을 일깨워주고 이웃과 나눔의 미덕을 지혜롭게 행한 복실이 엄마. 이웃 친척간 정리와 형제간 우애, 부부간의 사랑을 항상 이르며 아이들에게 해준 것이 없다며 죄송스럽다던 복실이 엄마.
한 여름 덥다 덥다 하면서 자신은 뒤로 한 채 나에게 연신 부채질을 하던 복실이 엄마. 입이 짧아 까다롭고 봄을 타 잘 먹지 않는 나를 어떻게 하면 먹게 할까, 노심초사하던 복실이 엄마. 남자는 소처럼 많이 먹어야 한다면서 늘 챙겨 먹게 하고, 작은 복은 부지런함에서 온다고 늘 바삐 다니던 복실이 엄마.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요? 진실과 상식은 우리 주위에 있음을 깨닫기 어렵겠지만 천천히 마음속으로 헤아려보면 꼭 필요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동안 삶을 위해 이치에 맞지 않은 욕심도 내고, 하고자 하는 일도 해봤지만 이제야 모두 별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작은 몸 안에 무엇이 그리 잔뜩 들어가 세상 사는 일을 놓쳐 버렸는지 턱없이 모자란 나는 다시 기회가 오질 않는다는 사실을 입으로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비우고 내려놓으면 부족하고 궁핍해질 것 같지만 우주의 섭리는 베풀고 비우며 허허로워진 우리 안에서 원활하게 순환될 수 있습니다.
복실이 엄마는 이처럼 채움보다는 비움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떠나갔습니다. 딸이 많다고 걱정했는데 딸이 안 많다는 것을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요?
곁에 있을 때 다하지 못한 정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오늘은 목이 터져라 불러 봅니다. 복실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