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유택지에 한 시간만 앉아보라-장풍득수(藏風得水) 이야기(92)
진대수
풍수가 겸 수필가
(016-624-3694)
기(氣)가 머무는 곳을 어떻게 찾는가. 기는 땅 속을 흐르다가 피어나면 만물을 낳게 된다. 기의 흐름은 땅의 형세에 의지하고 기가 모이는 것은 형세가 그치는 곳에 의지한다. <주역>계사전(上)에 재천성상 재지성형(在天成象 在地成形)=하늘에는 상(象)을 이루고 있고, 땅에서는 형(形)을 이루고 있다는 말에서 풍수학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다른 동양학과 같이 풍수학도 주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학>성의(誠意)편에는 성어중 형어외(誠於中 形於外)라고 하여 진실함이 속에 가득 차 있으면 바깥으로 드러난다고 역설하고 있다. 다른 말로는 생선을 싼 종이는 비린내가 나고 향수병을 싼 종이는 향기가 난다는 말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형기론(形氣論)의 바탕이다. 사기<史記>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에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나온다. 주머니속의 송곳은 바깥으로 드러난다는 의미로써 땅 속에 길한 기운이 서려있으면 바깥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 드러나는 모양새를 찾아내는 것이 형기론이다. 그러면 친상(親喪)을 당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풍수적인 대처를 해야 하는가.
우선 터를 쓸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다. 대상을 모르고서는 천하의 명당이란 있을 수 없다. 터와 터를 의지할 사람의 관계를 살펴야 하는 것이 풍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보다 고인을 잘 아는 자식이 부모님의 유택지(幽宅地)를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은 기를 통한사이다. 따라서 동기감응(同氣感應)이 가장 정확하게 일어날 수 있다. 자식은 우선 부모님을 모실 유택지 위에 앉아 고요히 눈을 감고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오직 돌아가신 그분만을 생각하며 한 시간만 있어보라. 이것은 풍수지리에 해안이 없어도 느낌으로 감지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면 부모님과 이 자리가 맞는 자리인지 판단이 선다. 그 판단은 본능과 직관,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전달된다. 달리 말하면 땅이 그 효성에 감응하여 돌아가신 분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사표명을 해올 것이란 뜻이다.
좌향의 결정방법도 마찬가지이다. 고인이 좋아하실 방향을 고르면 된다. 주변을 바라보면 이 방향의 경관이 고인이 가장 좋아하실 곳이란 판단이 설 것이고 그것이 좌향이 된다는 것이다. 풍수는 땅은 거짓이 없고 욕심도 없다고 말한다. 하늘 뜻 그대로 땅은 집행할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소유대상과 오염으로 전락한 모체(母體)인 땅, 발복을 받아보자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집터나 부모의 묘터를 구한다면 그것은 좋은 땅을 찾는 반풍수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땅과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터. 바로 그곳에서 명당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여 효심이 부실하면 분금이 틀리고 공망(空亡)을 범할 수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