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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갑진년 늦은 봄날에 – 이호석 수필가

오늘은 오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화무십일홍’이라더니 봄을 상징하며 한껏 뽐내던 개나리꽃 진달래꽃 철쭉꽃 등이 그새 다 사라져 버렸다.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니 창문이 훤하다. 부스스 일어나 안방과 거실을 오가며 밤사이 움츠렸던 몸을 잠시 움직인다.
창문을 여니 싱그러운 아침 향기가 가슴 가득 안겨 온다. 주섬주섬 간소복을 챙겨 입고 거실 문을 열고 나간다. 고개를 들어 집 주변의 산과 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온 산야가 어느새 초봄의 연둣빛 옷을 벗어버리고 초록 옷으로 갈아입었다. 초록이 가득한 산야가 조금은 무거운 느낌을 준다.
집 주위의 참새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즐겁게 놀고 있다. 짹짹 노래하며 앞집 지붕과 우리 집 개나리 울타리 사이를 신나게 날아다닌다. 뒷산의 뻐꾸기는 무슨 설움이 그리도 많은지, 이른 아침에 혼자서 구슬피 울고 있다.
발길이 저절로 마당 옆 텃밭으로 간다. 30여 평 되는 텃밭은 초봄부터 나의 정성이 가득 담겨있는 곳이다. 몇 차례 잡초를 해치우고 정리한 밭에 가지 네 포기, 오이 여섯 포기, 토마토 아홉 포기, 고추 스무 포기, 땅콩 한 이랑을 심었다.
매일 아침 나가보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는 채소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그중에도 요즘 고추, 오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나의 눈길을 자주 이끈다. 아침에도 잠시 나가 한번 돌아보고 올 생각이었지만 앙증맞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그냥 올 수가 없다. 또 골로 다니며 곁가지도 따주고 열매도 솎아주며 따스한 손길을 준다. 시도 때도 없이 잡초가 나고 자라 이를 메느라 텃밭이 지겹기도 하였지만 채소가 자리 잡고 살금살금 자라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즐겁고 행복한 장소가 된다.
텃밭에서 돌아서려니 또 뒤뜰의 유실수들이 손짓을 한다.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간다. 올해는 살구, 자두, 사과나무에는 열매가 거의 없다. 초봄 꽃이 필 무렵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동해로 열매가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들보다 조금 늦게 꽃이 핀 단감나무는 동해를 입지 않아 벌써 큰 완두콩만 한 감들이 주렁주렁 많이 달려있어 가지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잠깐 앞뒤 텃밭을 돌아보고 아침 운동으로 마을 주변을 한 바퀴 돈다. 곳곳에 모내기한 논들이 보기에도 시원스럽다. ‘며칠이 지나면 금세 벼가 무성하여 논바닥이 보이지 않을 것이고 이어서 벼가 패고, 벼알이 여물겠지!’ 빠른 세월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앞서간다. 들판에는 아직 모내기하지 않은 논이 띄엄띄엄 있어 누런 잡초가 마치 머리 버짐 흉터처럼 보기가 좋지 않다.
어제 저녁 운동을 나갈 때는 모내기한 논에서 많은 개구리들이 새로 생긴 놀이터가 좋아서인지 밤늦게까지 목이 터지라 노래하더니 아침에는 늦잠을 자는지 아직 조용하다.
오늘은 이주홍문학관 강의실에서 글쓰기(수필 쓰기) 공부하는 날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이웃 마을 친구와 함께 글쓰기 강의실로 간다. 몇 년을 다녀도 글쓰기는 항상 부담스럽고 잘 써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강의실로 갈 때는 언제나 즐거운 마음이다. 나이와 남녀 구별 없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또 문우들이 정성껏 써온 수필을 낭독하고 합평을 하는 두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 그리고 모두 함께하는 점심시간도 강의 시간 못지않게 즐겁다. 글쓰기 공부 얘기가 이어지기도 하지만 각계각층에서 삶을 살아온 재미있는 얘기에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이렇게 오전 공부를 끝내고 즐거운 맘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당일 신문을 읽거나 티브이를 보면서 두서너 시간 휴식을 취한다. 휴식이 끝나면 친구와 함께 황강변에 있는 그라운드골프장으로 나가 오후 운동을 한다.
운동장 바로 옆에는 황강 수중보가 건설되어 있어 항상 바다처럼 푸른 물결이 춤을 추며 시원함을 안겨준다. 이곳은 주로 생산 일선에서 퇴직한 6, 70대 남녀들이 건강관리를 하며 제2막의 인생을 즐기는 곳이다.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여가선용과 같은 운동을 하다 보니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또 다른 우정이 쌓인다.
서편 가까운 거리에는 옛 대야성지가 있고 천년의 고찰 연호사와 고려시대 건립한 문화재 함벽루가 있다. 대야성지는 삼국시대 신라의 군사요충지로 백제와 경계하고 있었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 백제 윤충 장군의 일만 대군에 의해 처음으로 함락되었다. 그 후 신라가 다시 대야성을 수복하였으나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 왕건의 군사들이 몇 차례 더 쳐들어 와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바로 옆에 있는 고찰 연호사는 백제 윤충 장군에 의해 성이 함락될 때 치열한 전쟁으로 수많은 군사가 죽어 그 영혼들을 달래주기 위해 건립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나는 오후 운동을 하다가 잠간 쉬는 시간이면 가끔 인접해 있는 대야성지를 바라보며 삼국시대 그 시절 용감한 병사들이 말을 타고 황강변을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도 신라인의 후예다. 작은 자긍심을 가지며 대야성을 끝까지 지키려다 장렬히 전사한 죽죽의 기백을 흠모한다.
갑진년 늦은 봄날, 즐거운 하루가 또 아쉬움을 남기며 무심한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