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청과 합천향교는 야로면으로 언제 옮겨왔는가? – 이병생 전 합천문화원 향토사 연구소장
옛날 수해로 인하여 합천군청과 합천향교를 야로면으로 옮겨와서 합천군청은 합천읍으로 다시 옮겨 갔고, 합천 향교만은 현재에도 야로면 구정리에 남아 있는데 각종 자료들마다 옮겨왔다는 것이 ①고종18년 신사(辛巳)년 1881년에 옮겨왔다는 설과 ②경인(庚寅)년1890년 옮겨 왔다는 설이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 아래에 그 자료들을 열거해 보겠다.
야로면에서는 현재 야로면지를 만들고 있는데 확실한 근거와 자료를 찿아서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되겠다.
※각종자료출처
■ 합천향교 현 위치 앞 안내문
합천향교는 조선 세종 때 세워졌으며, 헌종 9년 1843년에는 대성전을 고쳐 지었다. 고종18년 1881년에 홍수로 합천군청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합천 향교도 함께 옮겼다. 이후 군청 은 합천읍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합천 향교는 이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 합천 지명사 (2019년 06월 발행) 389P
조선고종 18년(1881년) 수재로 인해 군청을 야로면으로 이전할 당시에 함께 이건된 것이다.
■ 합천 향안지(2008년 01월 발행
① 강양향교 연혁 203P
고종 18년 辛巳(1881년)에 군수 송기로가 향읍을 야로면 야로리로 향교 는 야로면 구정리로 이건 하였으며, 그 후 군수 민치순이 구읍 남산하로 환읍하였고, 향교만 남아 있었다.
② 합천향교 연혁(동책 431P)
⑴ 1890경인(庚寅)년에 항상수변이 심하던 읍을 군수 임치재와 유림장보 등이 야로리로 옮기고 동시에 향교를 구정에 옮겼다.
⑵ 1893계사(癸巳)년에 군수 민치순이 재임 시에 구읍 산하로 이건하고 향교는 그대로 보존하게 되었다.
■합천의 문화재 길잡이 (2009년 발행) 야로면 편 합천향교 137P
이 향교는 원래 합천군 소재지에 창건되었으나 조선고종 18년 (1881년) 수재로 인해 군청을 야로면으로 이전할 당시 함께 이건된 것이다.
■ 합천군사 1권(858P)
합천향교는 헌종 9년(1843년)에 홍수가 발생한 이 후 모래가 쌓이면서 강물이 범람해 고종17년 1880년에는 관아가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합천현의 읍치를 옮기 자는 여론이 있어 고종27년(1890년)에 읍 치를 야로면 야로리에 옮기고 향교는 야로면 구정리에 옮겼다. 고종 30년 (1893년)에 군민의 여론에 의해 군수 민치순이 읍치가 있던 남산 밑으로 옮 겼으나, 항교는 그대로 두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합천 누정록 (2002년 02월20일 발행) 합천향교 대성전 중수기 (2)348P
여기에 보면 경인(庚寅)년1890년에 군수 임치제가 읍 옮기는 일을 결정하여 야로에 건립하니 야로의 지형은 남과 북이 너무 멀고 길거리가 고르지 못해서 관리와 백성들은 읍을 복원 시킬 의사가 있고 군수도 가벼이 옮겼다는 생각이 있더니, 그 후 계사(癸巳)년에 민치순군수가 구 읍의 남산아래 터를 잡아 읍을 복원하고 향교는 복구하지 않았다.
■ 대양면지 (합천향교편) 148P
① 1890경인(庚寅)년에 항상 수변이 심하던 읍을 군수 임치재와 유림장보 등이 야로면에 옮기고 동시에 향교를 구정에 옮겼다.
② 1893계사(癸巳)년에 군수 민치순이 재임 시에 구 읍(현 합천읍)산하로 이건하고 향교는 그대로 보존하게 되었다.
■ 전통문화 계승을 위판 향내 유림과 지도층의 요람(2021년 합천향교 발행)
① 이 책을 펴내면서 9P. 합천향교전교 허석기)
9째줄 서기 1890년 항상수변이 심하던 그해 합천읍에서 군수 임치재와 유림장보 등이 합천군청을 야로면 야로리에 옮기고 1892임진(壬辰)년 합천군수 송기로가 합천향교를 야로면 구정리로 옮겼으며, 1893계사(癸巳)년 합천군수 민치순이 군청을 합천읍 남산 하로 이전하고 합천향교는 그대로 보존하게 되어 야로에 위피하고 있습니다.
■ 가야면지 (합천향교편) 1251P
① 1890경인(庚寅)년에 향상수변이 심하던 읍을 군수 임치재와 유림장보 등이 야로리로 옳기고 동시에 향교를 야로면 구정리로 옮겼다.
② 1893계사(癸巳)년에 군수 민치순이 재임시 구 읍 산하로 이건하고 향교 는 그대로 보존하게 되었다.
※ 참고로 야로면 야로리에 있는 활인대를 확인하였다. 그 내용은 활인대 이곳은 야로면의 옛소재지가 있었으며 1920경신(庚申)년, 1936병자(丙子)년에 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홍수가 있었다. 이곳은 많은 나무들이 있어 홍수가 나자 주민들이 나무에 올라가 목숨을 건지게 되어 그 고마움을 오래 간직하고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자 매년 7월11일(음력) 이곳에서 주민들이 제를 지낸다. 이래서 여기에는 합천군청과 향교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