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황강의 어제와 오늘 – 이호석 수필가
황강은 합천군 중심부를 흐르는 큰 강이다. 나는 이 강가 마을에서 태어나 칠십 대 후반인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다. 어린 시절 황강 백사장은 틈만 나면 뛰놀던 운동장이었고 무더운 여름이면 자연의 품속에서 마음껏 멱을 감는 넓은 수영장이었다.
황강의 발원지는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이고, 종점은 합천군 청덕면 적포리 낙동강과 합류하는 곳이다. 총연장은 111㎞이며, 이 중 합천군 지역이 64.3㎞이다. 강 양측에 접해있는 군내 지역은 17개 읍면 중 9개 읍면으로, 거주인구는 전체 군민의 58%가 살고 있다.
나는 근래에 와서 가끔 황강의 옛 모습을 생각해 본다. 지금의 모습은 어릴 적 추억 속의 그 풍경이 전혀 아니다. 이렇게 변한 것은 합천댐이 건설되고부터이다.
예전 황강의 봄, 가을, 겨울은 그야말로 평화로웠다. 70년대까지 전국의 하천이 거의 정비가 되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여서 더 평화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봄이면 강가 곳곳에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가 봄바람에 흥겨워 춤을 추었고 강변 둔치에는 온갖 풀들의 천지였다. 그곳에 피는 수많은 크고 작은 꽃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바로 평화로움이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소먹이며 마냥 뛰놀았다.
여름 장맛비가 찔끔거리다가 끝머리가 될 무렵이면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태풍이 미친 듯이 자연과 인간을 어지럽게 흔들어 놓았다. 그러다가 하늘에서 구멍이 난 듯 폭우를 쏟아내면 금방 황강은 무서운 악마의 얼굴로 변한다. 강과 주변 들녘은 넓은 황토물 바다가 되면서 봄부터 농부들이 땀 흘려 지은 농작물을 처참히 짓밟고 휩쓸어 버렸다.
상류 둔치에 심어놓은 호박이나 수박이 덩굴째 떠내려오기도 하고, 임시 우리에 한두 마리 기르던 소, 돼지가 떠내려 오기도 했다. 가끔은 농작물이 걱정되어 들로 나간 농부들을 집어삼켜 집에 있는 가족들과 생사를 갈라놓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는 황강과 합천천이 합류하는 부근에 논농사를 지었다. 비가 조금만 많이 내려도 벼들이 금방 물속에 잠겨 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부친께서는 불어난 강물 때문에 논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강 건너 높은 한길 가에 서서 황토물 바다를 쳐다보며 발길을 돌리지도 못하고 땅이 꺼질 듯이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옆에서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너무 애가타고 안타까웠다.
모내기한 논에 홍수가 지나가면 바로 가슴팍까지 오는 물논으로 들어가 장대로 벼를 흔들며 씻어야 했다. 어느 해인지 여름 홍수가 나고 형님과 동생이 벼를 씻기 위해 논으로 나갔다가 논 귀퉁이에 이웃 마을 아저씨가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왔다가 급류에 휩쓸려 시체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한 적도 있다.
황강은 상수도 시설이 없던 그 시절 지역민들의 식수와 생활용수는 물론 농업용수까지 공급하였고, 빨래터와 목욕탕 역할도 톡톡히 하였다. 그야말로 많은 군민의 삶에 꼭 필요한 젖줄이었다.
그렇게 긴요한 황강이지만 여름철이 되면 온갖 자연재해를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조상 대대로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황강은 지역 주민 생활에 두 얼굴을 가진 존재였다. 70년대까지는 모든 장비가 귀했다. 가뭄이 계속되면 농부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삽을 들고 강으로 나가 온 강바닥을 파헤치며 물길을 찾아 헤매었다. 농부들뿐 아니라 지역의 고등학생, 예비군, 민방위대원이 동원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질 때에는 속수무책이다. 하늘만 쳐다보면 원망할 뿐이다. 대자연 앞에서 가물 때는 물길을 찾아 강바닥을 헤집고 다녀야 하고 홍수 때는 발만 동동 구르며 하늘만 쳐다보고 원망하는 인간들이 너무나 나약한 미물 같아 스스로 불쌍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황강변 일대 농사를 지으며 살던 그 많은 사람들이 매년 여름이면 서너 차례씩 이런 아픔을 겪어야 했고, 합천읍소재지 등 저지대 주택에서는 홍수가 닥칠 때마다 인근 부실한 제방이 터질까 봐 가슴 졸이며 피난을 다니기도 하였다.
7, 80년대부터 국가 경제가 나아지면서 전국의 하천도 차츰 정비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80년대에 합천댐이 건설되면서 댐 하류 황강 지역은 너무나 큰 변화를 불러왔다. 댐이 건설된 이후부터는 강변의 그 많은 농토에는 여름이면 몇 차례씩 유행처럼 찾아와 애를 먹이던 한·수해가 없어졌다. 또 곳곳에 수십 년 수백 년 물속에 잠겨있던 많은 농지가 드러나며 옥답이 되어 인근 주민들의 삶이 크게 향상되었다. 곳곳의 저지대 사람들은 수해 걱정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고, 대양면 정양 지역과 같이 도시형 주거지가 건설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다. 황강변 둔치 곳곳에 축구장, 야구장, 파크골프장 등 훌륭한 체육시설들이 많이 만들어져 매년 전국의 많은 건아들이 모여 각종 경기를 한다. 지역 경제에 도움은 물론이고 지역을 전국에 널리 홍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곳곳에 공원과 꽃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군민들의 평안한 안식처가 되어 있고, 많은 외지인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근년에 우리 지역에 귀농 귀촌한 사람들과 과거 여름철 황강의 피해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합천댐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조상 대대로 피땀 흘려 지은 농산물을 매년 한·수해로 흉년을 겪어 대를 이어 가난에 찌들었던 과거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평소 공기의 귀중함을 모르고 살 듯이 댐의 고마움은 전혀 모르고 자연재해가 적은 복된 지역이라고 좋아들 한다.
이런 사람들 중에 간혹 당시 이곳 출신 대통령이 우리 합천을 크게 발전시키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대기업이나 대학교 등을 유치하여 큰 도시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세월의 변화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지역의 여건과 입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당시는 철도나 항만시설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도로는 모두 좁은 비포장 자갈길이었다. 그러한 여건을 한꺼번에 개선하여 큰 공업도시나 교육도시로 만든다는 게 과연 가능했을까.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빠른 세월 속에 인구가 급감하면서 이웃 고령군과 같이 대학교를 유치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이나 또 중소도시에서 많은 기업들이 이전하거나 폐업하는 경우가 허다한 게 현실이다. 당시 대통령이 댐을 건설하여 물 걱정 없이 자손 대대로 풍요롭게 살게 한 것이 지역 여건에서는 백번 잘한 일인 것 같다. 우리 지역에서 이보다 더 큰 선물이 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