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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역사다(47) 우리 역사의 어두운 단면 – 권길홍 수필가

과거 역사를 배우면서 지배계급이 백성을 착취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고로 우리나라 국사를 배웠다. 내 어설픈 지식으로 역사는 강자의 편이라고. 그래서 나 같은 약골에게 부과된 병역의무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말 한 마디 못하고 34개월 넘는 기간을 견뎌냈다. 아니 사실 5천원도 안 되는 5급 을류 공무원 봉급으로는 내 배 채우기도 모자라 달아나다시피 군에 갔지만!
우스운 건 이렇게 약골인 나는 군에 가서, 또 월남전까지 참전하여 초뺑이?를 치는데 어떤 정치한다는 사람 자식 중에는 키가 180cm가 넘는 아들을 체중미달이라고 우겨서 군입대를 면제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내 키가 168cm에 체중이 40kg! 물론 병적기록카드에는 43kg으로 고쳐서 군입대를 한 나는 체중미달이라는 게 얼마나 비정상적 약골의 상태인지 아는데 그 잘난 정치인은 그것도 몰랐을까. 신체검사장의 군인 몇 명만 구워 삶아놓고 키가 180cm 저거 아들은 체중미달로 군입대가 면제 될 거라고 생각하고 면제를 받은 뻔뻔스러운 자세. 이렇게 우리나라의 지배계급이나 상류층의 아들들은 체중미달이라면서 빠져나갔고, 또 진보계인 어느 서울시청 유력인사의 아들은 평발이라 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병역의무를 다 피해 갔지만 나처럼 별볼 일 없고 힘없는 백성들은 당연히 군대로 끌려가는 걸로 알았다.
그보다 더 한 건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의 가난까지 포함해서 우리 민족에게 덮어 씌워진 가난의 굴레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체념했다. 그래서 이 땅의 배부른 양반이나 사대부인 위정자들은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백성들을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살게 하고 자신들은 쏙 빠져나가 호의호식하고 저희끼리만 배부르게 살았다. 우리나라의 그 많은 위정자 가운데 박정희 정권에서 일하던 일부의 정치인들만 그 가난과의 거룩한 투쟁을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하여 가난을 물리쳤지만, 다른 위정자들은 아무 관심 없이 그저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이 어리석은 사고로 살았고 지금도 그 어리석은 사고가 남아 정치하는 인간들은 당연히 군대에도 빠지고 국민들이야 고생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아간다. 이처럼 조선의 더러운 제도로 양반은 군입대를 안해도 되는 뻔뻔스런 사고가 이어져 온 나라!
그렇지만 아무리 가난하고 못사는 우리나라지만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그래도 군대까지 파병하여 북쪽 월맹의 공격을 막아주고 구해주러 갔던 우리 파월참전 용사를 이 나라는 어찌 대했나. 그 베트남의 우리 부대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들까지도 우리를 깔보고 무시하고, 심지어 구두닦이 소년도 우리 파월사병을 하찮게 생각하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런 푸대접과 무시속에 참전했던 군인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더위에 지쳐갔지만 우리나라 지배계급은 자기의 권력과 가족들만 챙기는 이기적인 역사가 더 우리를 힘들게했다.
그렇더라도 역사는 가진 자의 편이라고 생각했고 조선시대의 백성을 착취하는 그 가렴주구만 아니라면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에드워드 기번이니 시오노 나나미와 사이먼 베이커 같은 분들의 서양 로마역사에 대한 책을 읽으며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이 로마의 역사를 읽을 때 나를 열광시킨 부분이 많았다. 집정관이나 황제까지도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사병들과 함께 추운 국경에서 전투를 하고, 눈이 오는 변경에서 함께 숙식하며, 그 방대한 제국을 순방하면서 군인들을 위로해주는 나라가 있었다고!
그 로마의 황제니 집정관이라는 지배계급들이 하찮은 백성의 눈치를 보고, 그 별 볼일 없는 백성을 위해 수도를 놓아주고, 아니 이천 년 전에 황제가 백성들의 생활이 불편하다고 수도를 끌어다 준다? 이해가 되는 이야기인가? 우리네 양반 같으면 그 흔한 무지랭이 백성을 시키든지 집에서 부리는 종들에게 길어오라 시키면 될 거고, 백성들이야 기근과 가뭄으로 밥을 먹던 굶던 저희들끼리 해결하라고 못본 체 하면서 시간만 보내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사고로 살았던 조선의 위정자들! 이게 불과 1, 2백 년 전의 우리나라 조선이었다. 거꾸로 로마는 무려 2천 년도 더 전에 나라에서 백성을 위해 수도를 놓아주고 더 나아가서 백성들이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서커스니 검투사들의 시합을 공개적으로 관람케 하여 모든 시민이 재미있게 살도록 했다. 또 로마로 이주해온 백성들이 밥을 굶지 않도록 밀을 싸게 배급해주었다. 이런 일을 이천 년 전의 나라에서 한 일이라면 우리 국민들은 믿어줄까. 로마 인근의 오스티아 강구에 즐비한 밀창고는 바로 이 일의 증거다. 로마도 식량이 부족하니 인근나라에서나 북아프리카 곡창지대에서 수입을 하여 배급하려 한 증거가 되겠다.
하긴 이런 로마도 갈리아와 이베리아반도를 개척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어 험준한 산을 뚫으며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때는 나라가 발전하고 강대해지면서 부강했다. 거꾸로 말년의 로마가 전쟁을 기피하고 외부 침략국들과의 싸움도 마다하며 편한 길만 찾고, 일상적으로 사치하고 향락에 젖어 살면서부터 먼저 지배계급끼리 분열한다. 이웃나라를 정복해서 단일의 로마에 편입시켜야 할 목표도 사라지면서 로마시민이라는 시민의식에 대한 긍지도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부만 추구하는 생활에서 안락을 누리고 게으름과 나태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부터 그 거대한 제국도 서서히 틈이 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서로 나라도 분열되지만 로마제국의 백성들이 가진 애국심도 사라지면서 나라는 망해갔다.
요즘의 우리나라는 어떤가? 또 조선은 어떠했나? 양반 자기들끼리 허황된 성리학이나 논하고 진경산수를 그리고 놀면서 세종대왕께서 정말 이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창제하신 한글을 백성들에겐 안 가르쳐준 나라였다. 그러면서 한양도성에서의 삶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긴 우리 이기적이고 못난 위정자들, 황현의 매천야록에 있는 글이다. 그런 못난 왕과 이기적인 지배계급의 인간들 때문에 일본에 식민통치를 당하고 중국에 사대하며 산다고 중국에게 항상 업신여김을 받으며 살아야 했고, 우리가 이렇게도 가난하면서 못살고 힘들게 사는구나 생각되어, 우리가 사는 이 나라를 이끌 사람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이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