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이보다 더 완벽한 러브게임이 있나요?”

제3회 합천오픈 영호남 지역신인부에서 <강배훈-안영철>조가 우승을 차지해 우승자 중 강배훈 선수와 테니스 입문부터 우승까지 테니스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박황규 기자

Q. 이번에 제3회 합천오픈 동호회 테니스대회 영호남 지역신인부 우승을 차지했다. 축하한다. 우선 테니스란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
강) 테니스는 공을 네트 위로 넘겨 금 안에 넣으면 되는 운동이다. 상대의 공이 바닥에 튀기기 전에 바로 치든 혹은 코트에 한 번 튀고 난 그 공을 상대 진영으로 넘기면 되는 운동이다.

Q.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당신에게 테니스는 어떤 운동인가를 묻는 것이다.
강) 공을 쳐서 금 안에 넣으면 되는 게임인데 그게 안 되어 늘 연습해야 하는 운동이 테니스가 아닐까.

Q. 테니스를 처음에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고 그렇게 안 되는 테니스를 계속 하고 있는 이유도 궁금하다.
강) 아버지께 간이식을 해드리고 나서 이후 나의 건강 회복을 위해 테니스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테니스 때문에 건강은 잘 회복되었다. 하지만 나의 테니스 실력은 늘지 않았다. 그럼에도 테니스는 장점이 아주 많은 종목임을 알게 되었고 그 때문에 시간을 내 테니스공을 계속 치고 있다.

Q. 어떤 장점이 있는가? 확실한 장점만 말해 달라.
강) 테니스는 매너 게임이다. 몸보다 마음 치유에 좋은 운동이다. 공으로 끊임없이 상대와 피드백을 하다보면 결국 나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다. 철저히 매너와 예의를 지키면서 상대와 겨루면 내 스스로에게 엄격해지고 결과적으로 내가 단단하게 된다. 그렇게 점점 강도와 격렬함이 높아지다 어느 순간 몸과 정신이 상당히 부드럽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공이 라켓을 타고 결대로 부드럽게 흘러간다. 이렇게 실력이 올라간다. 실력이 올라가면서 라켓도 공도 그리고 사람도 부드러워진다. 무엇보다 테니스는 엄격한 수련 과정 전반에 각별한 흥미와 유희가 함께 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유사한 구기종목인 탁구나 배드민턴에 비해 공수(攻守), 경우의 수가 확실히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Q. 그건 테니스 교본에 나오는 말 같다. 흔히 지독한 사랑이 비밀스러운 법이듯 자신만의 각별한 테니스 애정에 대해 말해 달라.
강) 행성 같은 형광색 공이 땅 위에서 그리고 머리 위로 떠다니는 걸 보면 우주의 섭리가 느껴진다. 제 맘대로 튀고 불규칙 바운드가 많은 세상에서 테니스는 질서와 순리가 엄청나게 잘 지켜지는 경기다. 고무공은 안에 품고 있는 공기의 힘과 함께 통통 튀면서 때리는 방향과 강도에 따라 한 치 오차 없이 정확한 각도로 반응을 한다. 그게 우주의 순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희랍시대 별 예찬론자인 인류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가 밤 하늘 별을 보다 웅덩이에 빠졌듯 공을 좇다보면 마음과 몸이 정화가 될 지경이다. 공을 때리고 누르다 보면 내 모든 더러운 때가 스케일링 된다는 기분마저 인다.

Q. 공이 밤하늘 별로, 혹은 행성으로 보이는 지경인가?
강) 그건 합천의 별시인 손국복 시인을 테니스장으로 초청해 테니스 관전평 시를 한 편 부탁한다면 그분께서 확실하고도 명쾌한 시(詩)로 답변을 주실 것이다.

Q. 코트장에는
언제 몇 시에 가는가?
강) 비밀스런 시간이 있긴 하다. 밤늦게 불 꺼진 테니스코트장에 올라가 조용히 걷는 때가 있다. 비밀인데 합천테니스장은 밤에 혼자 산책하기에 완벽한 곳이다. 두 귀에 꽂힌 팟에서 흘러나오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듣고 있노라면 아무도 없는 밤의 코트장에서 공이 휙휙 지나가고 공이 라켓에 맞는 청명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귀에서 팟을 빼면 산을 타고 도는 바람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최고의 소리인 절대 무음, 정적이 깔려 있을 때 그때를 특히 좋아한다. 그래서 코트장은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다.

Q. 그럼 비밀스럽지 않은 시간에
대해 말해달라.
강) 밤늦게 불 꺼진 시간이 아닌 시간에 코트장을 가는 것이 비밀스럽지 않은 시간이 되겠지.
주말 오후 혹은 저녁에 게임이 없는 빈 코트 장을 빙빙 돌며 산책하는 시간이다. 옆 코트에서 게임 하는 소리, 테니스공이 라켓에 맞아 넘어가는 소리, 게임을 하면서 환호를 지르는 소리와 에러의 탄식을 내뱉는 소리가 내게는 백색소음이 되어 생각 정리 및 마음 정리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 그러니까 테니스는 내 삶의 완벽한 여백이다. 여백이되 그 여백을 채워도 여전히 삶의 여백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주어 참 좋다.
테니스를 치러 오시는 분들은 다들 직업이 모두 다르다. 그 직업들이란 게 대게 정형화 되어 있지 않나. 그런 직장에서 퇴근을 하고 테니스장에 모여 한낮 동안의 삶의 피로와 공허를 처리하기 위해 라켓을 잡는 분들은 모두 아름답다. 이제 여가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시대다. 면, 구, 선이 펼쳐진 코트에서 푸른 공의 비행을 조종하는 일은 아마 먼 후일 하게 될 우주여행과 흡사한 기분이 되지 아닐까.
그 코트(court) 위에서는 세속의 시끄러움, 옳고 그름 가부(可否)를 판결하는 게 아니라 오직 행복과 짜릿함, 그길에 대해 판결할 것일테다. 물론 공이 내 뜻대로 다운 더 라인(down the line)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가끔 밤늦게까지 테니스를 치고 땀을 흘리고 난 후 코트장 샤워실에서 씻고 우체국 회전교차로, 씨유 옆에 있는 무인카페서 로봇이 뽑아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2개월씩 젊어지는 것 같다. 그러길 반복하면서 몸이 점점 가벼워졌고 이번에 결국 우승을 하지 않았나 싶다.

Q. 대답하는 걸 보니 게임도 질질 끌며 빨리 끝내지 못하는 긴 스토르크를 할 것 같다. 발리처럼 짧고 단명한 답변으로 부탁한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강) 윔블던을 좋아한다. 상하의 및 운동화 모두 흰색 옷을 입고 나온다. 난 위아래 흰색 유니폼을 맞춰 입고 한 번도 코트장에 가보지를 못했다. 그렇게 하얀색 옷을 위아래로 차려입고 흰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상대와 아무 말 없이 한 시간 정도 랠리를 하는 게 꿈이다.

Q. 전국대회도 노려볼만 할텐데?
강) 이번 지역대회에서는 파트너 안영철 선수가 잘 해주어서 우승을 했다. 태권도를 하는 친구인데 힘과 민첩성을 고루 갖춘 수준급 선수다. 나는 실력이 떨어진다. 전국대회는 가당찮다. 사실 소속팀인 묘산클럽 월례회에서도 우승하기 힘든 실력이다.

Q. 마지막으로 진짜로 테니스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
강) 가장 밑바닥의 수치. 빈곤, 자존심의 몰락까지도 테니스에서는 ‘러브’라고 부른다. (테니스에서는 ‘0’점을 ‘러브’라고 한다.)
우리 인간은 태초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불변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랑이다. 그 사랑이란 것이 바로 테니스에 있지 않는가. 테니스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의 구체적인 유형은 라켓을 쥐어보면 알 것이다.
마치 내가 로저 페더러라도 된 마냥 이야기했다. 이해해 달라. 이번 대회에서 만큼은 타이틀을 땄으니. 다음에 꼭 코트장에 들러주면 좋겠다. 취재 노트와 라켓을 쥐고서 말이다. 합천 테니스의 인프라와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박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