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삼가향교 유림지도자 송시열 유적지 탐방 – 옥철호 전 삼가면장
삼가향교 유림지도자 99명은 10월30일 조선후기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제17대왕 효종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했던 우암 송시열 유적지를 찿아 충북 괴산군을 다녀왔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주자학의 대가로 많은 인재를 양성한 분으로 효종임금의 스승이기도 하다.
효종은 병자호란후 청나라에 8년간 볼모로 가있다가 귀국후 즉위했던 임금으로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송시열선생과 함께 청나라를 정벌하는 북벌계획을 추진했으나 어처구니 없게도 효종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조정에서 쫓겨난 김자점이 청나라에 일려 바쳐 조선 조정은 큰 어려움을 격기도 했다.
자신의 안의를 위해 국익에 반하는 일을 스스럼 없이 저지르는 비 인간적인 자들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사건으로 송시열은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 은둔생활을 하였으나 그후 효종은 다시 북벌계획을 비밀리에 송시열에게 전하고 간곡히 대궐로 돌아오라 하니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조정에 들어와 이조판서가 되었다.
충북 괴산군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우암 송시열선생의 유적지에는 화양서원, 만동묘,암서재, 읍궁암,묘소등 선생의 북벌애국사상과 민족자존정신이 깃든 곳일뿐만 아니라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로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왜곡파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중 만동묘는 우암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임진왜란때 조선에 원군을 파병한 명나라의 신종과 마지막황제인 의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하였으나 1908년 일본에 의해 철폐되고 제사도 금지 되었다.
1937년에는 제사를 지내는 유림을 구속하고 묘정비는 징으로 쪼아 글씨를 알아볼수 없도록 훼손하였으며 묘정비는 땅에 묻어 버렸다. 광복후 매몰되었던 묘정비를 찿아 충청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하였다.
우암 선생은 83세 되던 1689년 (숙종25년) 장희빈의 소생을 왕세자로 책봉하는 것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는 이유로 제주도로 귀양 갔다가 서울로 압송중 전라도 정읍에서 사사 되었다.
사후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에 묻히었다가 1957년(영조33년) 현위치로 이장되었으며 신도비는 1779년 정조가 비문을 지어 세우도록 한 것이다. 묘소와 신도비는 1976년 충청북도 기념물 제 10호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사적제 417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삼가향교 명륜당에는 공자를 비롯한 선현 17현을 모셔두고 매년 춘추계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는데 17현의 선현중 우암 송시열선생의 위패도 모셔두고 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