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해인사에 대한 글을 쓰는가?
이 병 생
합천문화원향토사연구소장
만약 해인사를 팔리지 않고 합천에서 왔어예! 했으면, 과연 그 노인들이 합천을 알 수 있었을까 싶다. 수년이 지난 후 ··· 그 소리가 뇌리를 스쳐갔다. 야! 너희들 참 좋은데서 왔구나! 하는 말이…..!
내가 해인중학교 3학년 때(1960년) 졸업여행을 서울로 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불편하여 가야에서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하니 밤 열시가 넘었다. 어느 절인가는 모르지만 법당에서 일박한 후 이튿날 창경원 구경을 갔다. 창경원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노인들이 모여 앉아 놀고 있으며, 얘! 너희들 어디서 왔니? 하고 물었다. 우리는 합천 해인사에서 왔어예! 하고 대답하니, 야! 너희들 참 좋은데서 왔구나- 하셨다. 그때 만약 해인사를 팔리지 않고 합천에서 왔어예! 했으면, 과연 그 노인들이 합천을 알 수 있었을까 싶다. 수년이 지난 후 나는 공직에 몸을 담아 근무할 시에도 흔히 그때의 그 노인들의 그 소리가 뇌리를 스쳐갔다. 야! 너희들 참 좋은데서 왔구나! 하는 말이…..! 그래서 나는 해인사에 대해 좀 연구를 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여름휴가가 되면 필기도구를 준비하여 해인사를 찾아 곳곳의 안내판이나 설명문을 기록하고 아는 노스님을 만나 모르는 것을 문의도 해보고, 또는 해인사인근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옛날 대처승으로 있었던 분들에게 해인사의 곳곳에 대해 질문도 해서 알게 된 부분을 A4용지 수백장에 다가 기록하게 되었다. 때마침 그 당시 해인사에 계신 백초 장재학 선생(그 당시 합천문화원 부원장)은 지금은 고인이 되었습니다마는 합천 문화원에서 지명사라는 책을 발간 할 계획인데, 원고를 좀 써 주었으면 하고 부탁하였다. 그때 그 당시 필자가 원고를 써 준 것이 지금 문화원에서 발간한 지명사 가야면편이 되었고, 공직을 떠난 후 2003년부터 합천문화원에 근무하게 되어, 우리 합천해인사를 찾는 전국의 문화원 회원들에게 안내와 아울러 해설을 하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른 것 같다. 해인사를 해설하게 된 인연으로 서울 관악문화원과 합천문화원이 자매결연을 맺게 되는 원인이 되게 되었고, 전국 200개 넘는 문화원이 10년 동안 해인사를 찾아와 해설하게 되므로 전국적으로 좋은 인연을 쌓는 계기도 되었다.
합천을 찾는 전국의 문화원회원에게 친절하게 안내하게 되므로 다시 찾아오게 되는 해인사! 또한 관광객 유치에도 일익을 담당하는 것 같았다.
그 보람으로 나는 전국문화원 연합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한민국문화원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안게 되었다. 나는 해인사의 해설을 일목요연하게 할 수 있도록 약 400매의 원고를 작성하여 <재미있는 해인사 해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간키 위하여 해인사 편집국에다 맡겨 둔지가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한권의 책으로 발간되지 못하고 있다. 해인사 편집국장의 잦은 인사와 아울러 지금의 국장스님에게 부탁한바 아주 좋은 자료를 준비하였다고 하며, 책자로 발간하자고는 하지만 일이 너무 바빠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씀이다. 내용으로 보면 성철스님 사리탑부터 팔만대장경판전까지 해설과 16암자의 창건유래, 18곳의 해인사 폐사유지, 28개의 대적광전의 벽화설명, 해인사 주련설명, 불교의 일상용어, 가야산내 19명소 등등 내용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어 이 한권의 책만 읽으면 해인사에 대한 모든 내용을 알 수 있다.
알고 있는 분들은 아직까지도 책자가 발간되지 않았느냐고 묻고 또한 해인사 해설을 마치고 나면 관광객들은 그 내용이 책자로 된 것은 없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하루 빨리 책자로 발간되어 많은 독자들이 읽고 해인사에 대한 내용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필자는 왜 해인사에 대해 계속해 합천신문에 연재하고 있는가? 해인사 소리길 부터 시작하여 삼대사찰의 창건유래, 원당암, 홍재암과 사명대사, 백련암과 성철스님, 국사단, 영지 등등에 대해 계속해 연재하고 있는 것은 해인사는 단지 불교에 대한 내용 뿐만은 아니다. 해인사의 창건과 관련된 신라40대 애장왕을 비롯하여, 신라 51대 진성여왕, 해인사를 고려의 국찰로 삼아 해동제일의 도량이 되게 하였든 태조대왕, 세조와 관련된 전설과 대장경판전중건, 팔만대장경을 재조한 고려의 고종, 글씨를 남겼던 안평대군·흥선대원군, 신라시대의 견훤과 궁예, 대가야(고령가야)와의 전설이 얽힌 국사단, 금관가야(김해가야)와의 전설이 얽힌 영지(그림자 못), 사명대사, 3.1운동에 서명한 33인의 대표 중 한사람인 백용성선사, 성철스님을 비롯한 유명한 역대 스님들, 역대 대통령을 지냈든 이승만 대통령 현판 글씨, 홍재암을 크게 번창시킨 박정희 대통령, 비로전 쌍둥이 부처님을 새로이 모실 수 있도록 지원한 노무현 대통령, 또한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국보 3점, 보물 19점 그 외에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1430m의 가야산을 비롯하여 1010m의 남산제일봉, 매화산 합천출신은 아니지만 해인사 곳곳에 많은 유적지를 남긴 최치원 선생, 홍류동 계곡 해인9곡, 19명소 등 수 많은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
많은 관광객이 찾아 들고 있지만 어느 누구하나 해인사에 대한 연구나 연재하는 이 없어 안타깝게 생각하며 비록 소(牛)등의 털 하나 쯤 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 합천군민에게 해인사에 대한 조금만한 내용이라도 알 수 있도록함에 목적을 두고 연재하고 있다.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매년 시민대학을 운영하고 있는데 필자도 수강하여 왔지만 국립공원에서 저명한 교수를 초빙하여 강의하는 것을 듣곤 하는데 경북대학교 교수는 성주 쪽 가야산을 많이 홍보하고 있고, 경상대학이나 경남과학기술대학 교수들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강의하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성주는 경북 쪽이라 가야산을 관광지화하기 위하여 성주가야산으로 하여 홍보하기에 혈안이 되어 대구매일신문사에 용역까지 주어 <상생의 가야산>이라는 책자를 발간하는가 하면 경상대학에서는 지리산에 대해 계속해서 연구하여 연재하고 있다. 필자를 찾아와 해인사를 다녀간 교수님들은 지리산 연구과제물을 흔히 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해인사는 해인사 내에나, 가야산국립공원이나 합천군에서 해인사 연구소 하나쯤은 둘 만도하다. 혹시 해인사에 대해 의문나는 점이 있어 알아보기 위해 몇 분의 스님에게 문의한 바 아는 이 없고, 옛날 대처승으로 있던 분들이 해인사 상가지역에 내려와 장사를 하고 있을 때는 물어 볼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고인이 다되어 무엇 하나 알 수가 없다.
우리의 합천이 얼마나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가?
지역적으로 보면 서울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경주가, 세 번째로 우리 합천이다. 필자가 합천군사 문화재편에 자료를 실을 때만해도(2013년) 국가지정문화재 35점, 도지정문화재 58점, 문화재자료 57점 합계 150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었으니, 지금쯤은 상당 수 많이 늘어난 숫자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합천에서는 해인사를 첫째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독자님들이 해인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우리합천군민은 세계사도, 국사도 공부를 하는데 하물며 코앞에 있는 해인사에 대해서는 많은 내용을 좀 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많은 역대의 임금이나 인물뿐만이 아니고 가야산을 비롯하여 남산제일봉, 매화산등지에 수많은 수종과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기에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