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을 편지를 쓰다 – 문경자 수필가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을 보며 가슴이 쿵 하고 내 안에 낙엽도 누렇게 그림처럼 붙어있다. 지난해 보다 더 가을을 타는 듯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한 삶이 켜켜이 쌓여만 간다. 다른 계절보다 이맘때가 되면 그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고운사람, 미운 사람, 짝사랑하던 사람, 앞집 순이, 뒷집 철이 등 저마다 숨겨놓은 이름 하나 살짝 떠오르면 실실 웃음이 나온다. 손으로 입을 막으며 누구에게 들킨 것처럼 사춘기 소년 소녀가 된다. 만국기 휘날리며 초딩들의 즐거운 가을운동회를 하며 일등을 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뛰었지만 꼴찌로 들어가 부끄러웠던 그때!
하늘은 높고 들판의 오곡이 익어가는 소리. 정자나무 잎들도 가을빛에 물들어간다. 햇빛에 세워 둔 참깨는 톡톡 튀어 사방에 흩어지고, 고구마는 자식들을 줄줄이 달고 키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훌륭하게 키우려는 맘과 똑같다.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잘난 놈은 잘난 대로 제갈길을 찾아간다. 들판에 나가 일을 하는 재미가 한결 가볍고 보람이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어느새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콧노래도 절로 나온다. 옛날과는 달라진 농촌의 풍경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거의 고향을 지키는 반면에, 젊은이들도 귀향을 하여 새로운 기술을 배워 특수 작물을 재배하는 훌륭한 인재들도 많아 더욱 발전하는 고향. 고향을 떠나 살면 고향 합천 율곡 말만 들어도 서로 기쁨을 나누며 껴안고 반가워한다. 사돈 팔촌의 촌수를 묻다 보면 친척에 가깝다.
2024년 11월 3일 일요일 재경합천군 한마음 체육대회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대운동장에서 열렸다. 17개면이 모이고, 각 면에서 기관단체장, 풍물단과 함께 대형버스로 새벽에 출발하여 여의도 대운동에 모인다. 각 면마다 먹거리를 풍족하게 준비하며 즐거운 체육대회를 맞이한다. 매년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얼싸안고 빙글빙글 춤을 추며 반가운 마음을 서로 표현하며 웃는다. 재경율곡면 선 후배님들께서 보내준 협찬금도 많이 들어와 행사에 큰 도움을 주었고, 어느 면 못지않게 힘을 합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며 꼼꼼하게 준비를 하였다.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17개면이 행진을 하며 풍물단의 아름다운 소리는 서울의 여의도를 완전 잊게 하고 합천 고향의 멋을 상기시켰다. 차려 놓은 식사를 하며 “어느 동네 살아요. 서울에 산지는 울매나 됩니꺼.”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주고받는 막걸리가 향수를 달래 준다. 앞집, 뒷집, 이 동네, 저 동네 살았던 사람들 저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몽실몽실 가을하늘에 구름이 되어 한 편의 그림을 그린다.
한잔의 술을 먹고 꽹과리, 징, 장구, 북소리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어울려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매년 들어도 신명이 나고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고향에서 올라오시는 분들의 정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농사일을 제쳐 두고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하고 와서, 신명 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그분들의 얼굴은 항상 밝고 웃으며 똑 같은 옷을 차려 입고 고운 미소를 띄며 다소곳하게 악기를 다루는 정성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재경율곡면은 선수들을 뽑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젊을 때 한때 날렸던 분들은 이제 참석하여 지켜보는 세월이 되었다. 경기종목은 줄다리기는 남 여 각 10명, 400계주는 남 여 각3명, 윷놀이 남 여 각1명 (말판1명)으로 정하였다. 율곡면은 윷놀이 공동3위를 하였다. 본부석에 올라가서 상금도 받았다. 줄다리기도 출전을 했다. 등수에 들지 못했지만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각자 있는 힘을 모았다. 줄다리기에 졌지만 상대방을 겁주게 힘껏 당길 때 기분은 좋았다. 서로 격려하면서 일으켜주고 위로 하는 모습은 정말 우승 못지않은 성과였다. 혹시라도 힘을 많이 써서 근육이 아프신 분들께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율곡의 끈기와 승부욕은 어느 면 못지않았다.
운동을 하고 돌아와 저마다 목마름을 축이고 고향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오색이 물든 운동장은 내장산 단풍보다 화려하고 메마른 도심을 단풍으로 물들게 하였다. 단풍구경보다 더 좋은 가을 운동회가 갈수록 더 풍요로운 그 자체였다. 올림픽은 역사와 인류의 화합을 위한 축제이지만 재경합천군 한마음 체육대회는 합천군의 자랑이요 타 군들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오후에 기관장들과 풍물단들이 행사를 마치고 합천으로 내려가기 위해 대형버스에 탔다. 재경율곡면향우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터라 그 분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헤어진다는 것은 다시 또 만남을 약속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인사말을 하고 돌아서 오는데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화단에는 하얀 국화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잘 가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끝까지 남아 일을 도와준 향우들과 음료를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가졌다. 어두워지는 운동장은 악기소리와 향우들의 웃음과 기쁨과 행복이 살며시 안아주는 듯 따듯하게 느껴졌다.
전철을 타러 가는 길에는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내가 가는 길을 안내해주었다. 율곡면향우님들께 우표 없는 편지를 부칩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