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 창의사에 대한 제언 – 송길영
우리나라는 단군 건국이래 반만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크고 작은 외 세의 침략이 932회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임진년(1592년)에 일어난 7년전쟁의 임진왜란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엄청나게 많았다고 한다. 일본은 명나라를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구실아래 700여척의 대선단 에 18,900여명의 병력으로 부산을 상륙하여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 20일뒤인 5월 3일 서울이 함락되었다. 수령 방백과 관군은 성을 버리 고 도주를 하는가 하면 선조 임금은 한성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 로 몽진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쟁을 바꾼 원동력은 명나라의 지원도 있었지만 이순신장군에 의한 제해권의 장악과 전국에서 봉기 한 의병의 활동은 불리했던 전쟁국면을 전환시킨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우리지역에서는 5월 10일을 전후하여 합천고을에서는 정인홍선생을 필두로 39분의 창의장 과 3,000여의병, 초계고을에는 전치원, 이대기 선생을 중심으로 한 28분의 창의장과 1,500여 의병, 삼가고을에는 윤탁, 박사제 선생을 비롯한 32분의 창의장과 1,600여 의병이 무계전투를 비롯한 여러전투에서 왜적을 격파하고 팔만대장경을 보존하였으며 임란창의장 대부분이 남명선생의 제자 또는 학통을 이어받은 경의지학에 심취한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합천지방의 임란창의와 의병활동이 방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임란창의壬亂倡義)를 기념 하는 표적하나 없는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1992년 5월 향토사학자, 유림, 창의장 후예, 지방 유지들이 합심하여 청사에 빛날 합천지역 임란창의 정신을 선양하고 고귀한 넋을 기리고져 합천 임란창의 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권위있는 사학교수들의 자문, 학술세미나개최 사료 문집 서한등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관계당국을 상대로 노력한 결과 문화공보부로 부터 “합천 임란창의 기념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인정받아 국비가 결정되고 도비, 군비, 창의장 후예들 의 출연금등 61억원의 예산으로 대병면 성리 합천호 본댐옆 1만여평 부지에 사당, 강당, 기 념관, 사적비, 기념탑 및 그외 부대시설로 이루어져 2001년 5월 10일 개관하였다. 사당(창의 사)에는 내암 정인홍선생 위패를 중심으로 좌우로 임란창의장 120분의 위패를 봉안하여 매년 5월 10일에 추모향사를 지내고 있다.
도로변 입구에 간판을 보면 “합천군 창의사”로 되어 있는데 주어가 되는 임란이 빠져있어 무었을 창의(創意)하는 곳인지 알수가 없다. 사당에 봉안된 모든분이 임란창의장이기 때문 에 임란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야 모든 사람이 직감할수 있기도 하다 당연히 합천임란창의사 로 바로 잡아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