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부산, 광주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다녀와서 – 이호석 수필가

지난 2월 1일에는 부산역 광장에서 개최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 하였고, 15일에는 광주시의 중심가이자 5.18 사태 때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던 금남로에서 개최된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 하였다. 요즘 전국에서 있었던 탄핵 반대 큰 행사는 모두 기독교 계통의 “세이브 코리아”라는 단체에서 주관하였다.
먼저 부산 행사에 간 1일에는 종일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합천에서는 버스 두 대에 82명이 참가하였다. 비가 오는 날씨라 많은 사람이 참가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였으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가하였다. 이들은 모두 나라를 걱정하며 자발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이다.
나는 참가자들을 보면서 누군가가 말한 진실을 생각해 보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떠 올랐다. 그렇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고 입으로만 떠드는 애향심이나 애국심은 모두 거짓이고 허위일 뿐이다. 오늘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바로 애국심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니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비가 내리는데도 우의를 입고 우산을 들고 부산역 광장으로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인파가 역 광장은 물론 인근 일부 도로 차선까지 점령할 정도로 많았다. 광장 안의 인파를 비집고 이동하는 데도 30분 이상 걸릴 정도로 많았다. 여러 지역에서 너무나 많은 차량이 밀려와서 우리를 내려준 버스가 주차할 곳이 없어 강연이 끝나고 돌아올 때까지 계속 시내를 돌아다녀다고 했다.
강연을 하는 연사들은 주로 기독교 유명한 목사님들과 훌륭한 지도자 들이였으며 맨 끝에 요즘 갑자기 영웅이란 칭호를 받게 된 전한길 선생의 강연이 있었다. 앞 어느 목사님의 강연에서 하느님께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다시 소생하게 해 달라고 하는 간절한 연설에 연사도 목이 메고 많은 참가자도 눈물을 흘렸다. 나도 얼굴 위로 흐르는 빗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흘렀다.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지고 눈물을 흘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나라의 위기를 깊이 느꼈고 연설 내용이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부산 현장으로 갈 때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참가자 모두 버스 안에서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때웠다. 이날 버스 두 대와 점심 김밥은 모두 개인의 성의로 만들어 졌으며, 돌아오는 길에 저녁 식사도 차 안에서 참가자들 스스로 기탁한 돈으로 하게 되었다.
다음은 2월 15일 광주 금남로에서 개최한 탄핵 반대 행사였다. 이날은 합천에서 버스 한 대에 38명이 참가했다. 버스와 점심 김밥은 역시 어느 한 사람이 준비하였다.
나는 중국이나 일본 등 외국 여행은 다녀왔지만, 광주에 가는 것은 이날 처음이었다. 내 마음에는 외국보다 광주가 더 멀어져 있었고 가보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출발하는 이날 아침에도 광주에 가서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벌어질까 봐 조금은 걱정되었다. 광주 시민들이 합천 출신, 전 전 대통령에 대해 5·18과 연관하여 큰 오해를 하면서 합천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출발할 때 버스 앞 전광판에 “탄핵 반대 합천”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어 이 글을 지우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그대로 가기로 하였다.
오전 열 시 반에 합천에서 출발하였다. 두 시간을 더 달려 광주 가까운 곳에 도착하여 버스 안에서 준비된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광주 시내로 향했다. 강연이 계획된 시간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였다. 목적지인 광주시 금남로 주변에 도착한 것은 1시 반쯤이었다. 광주 시내로 들어가니 오래된 도시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시가지 도로 폭이 대체로 좁았다.
이미 목적지에 많은 사람이 들어와 있어 우리가 탄 버스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조금 떨어진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모두 내려 5분가량을 걸어 들어가고 버스는 행사가 끝날 무렵인 다섯 시경 내린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5·18 사태 발생 시 하도 많이 들어본 금남로라 상당히 넓은 광장 도로로 생각하였는데 생각보다 좁았다. 두 시 10분 전쯤 목적지에 도착하였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고성능 스피크에는 우렁찬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네댓 사람의 연사가 차례대로 연단에 올라가 간단하게 강연하였다. 모두 광주 출신으로 서울 등 객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연설 주 내용은 이제 광주가 어느 정당이나 이념 사상 등을 떠나 국가를 생각하며 포용과 화합에 앞장서야 한다며 그렇게 되기를 호소하였다. 그다음으로 연단에 오른 유명한 연사도 역시 광주가 변해야 한다며 자기가 “광주여”를 선창하면 참가자들은 일제히 “깨어나라” 소리를 크게 지르게 하였다. “광주여 깨어나라”를 여러 차례 목이 터지라 소리 질렀다. 몇 차례 고함을 지러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 광주 시내 한복판, 5·18 당시 그 비극의 현장 금남로에서 내가 이렇게 고성을 지르고 있는 게 꿈만 같았다. 수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여러 차례 광주가 떠나갈 정도로 고성을 질러도 광주 시민 어느 한 사람 나와 빈정거리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 “깨어나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는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광주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
한편에는 광주 시내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나온 듯한 사람들이 집회 장소로 봉고차를 몰고 들어와 물을 끓이며 참가자들에게 어묵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또 너무 오랜 시간 서 있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간식 생각이나 같이 간 세 사람이 손에 들고 있던 태극기를 가진 채 인근 식당이나 가게에 돌아다녔지만, 종업원들이나 한 사람도 어디서 왔느냐를 묻거나 빈정거리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 친절하게 대해줘 고향에서와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이번 부산역과 광주 금남로 두 곳 행사를 다녀보면서 특별히 아래 몇 가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 평소 약간의 부정적 생각을 하고 있었던 기독교인들이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특별한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를 구하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 우리나라의 위기의식을 크게 느끼면서 이런 행사에 스스로 참여하는 국민이 생각보다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째, 광주와 여타 호남 지역민 상당수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넷째, 이번에도 대통령을 지켜 내지 못한다면 무기력하고 몸만 도사리는 기존 보수 정치인들을 모두 물갈이하고 정의로움을 지키는데 과감히 앞장 설 수 있는 신진 보수 정치인들을 키워야 지금같이 좋은 우리 체제를 지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지 않고 기각되어 복귀하는 것이 가장 다행한 일이지만, 만약 탄핵을 당하더라도 다수의 국민이 편향된 정당과 편향된 일부 판사들이 국가를 얼마나 위태롭게 하고 있는지를 잘 알았기 때문에 한동안 혼란을 겪더라도 우리나라 정치 질서와 법치가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 볼 수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