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중이 그립다.
임장섭
前합천교육장
어떤 사람인들 꾸중을 듣지 않고 자란 사람이 있을까!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꾸중 듣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몇 년 전 제자 한 사람이 집으로 찾아와 “선생님 절 받으십시오.” 그래 어쩐 일로 내게 이렇게 왔나?“ ”아! 선생님,저 7급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저가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세종시에 근무할 것 같습니다.” ”정말 축하하네.“ ”학창시절 선생님께서 꾸중을 하시면서도 ‘너는 큰 사람 될거야’하는 말씀이 공부하기 싫고 힘들어할 때 문득 문득 생각이 나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하는 게 아닌가! 꾸중을 한 나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꾸중을 들은 사람은 이렇듯 오래 기억을 하나보다 싶었다. 돌이켜보면 한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나로서는 학생들에게 매질과 꾸중을 많이 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지금도 50이 넘은 제자들이 찾아와 “선생님, 저 매 많이 맞았습니다”고 할 때면 미안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그런데 매질과 꾸중 뒤에 다시 불려 “선생님이 너 잘되라고 그랬다.많이 아팠제”하고 추수 지도를 하면 거의가 수긍하고 눈물을 흘린 학생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하긴 나도 부모님께 매와 꾸중을 달고 자란 것 같다.심부름 제대로 못해서 꾸중을 들었을 거고 공부안하다고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으리라. 그리고 어릴 적에 부모님이 장날에 나서면 몰래 따를 요랑으로 뒤를 쫓다가 마침내 얻어맞고 눈물코물 흘리며 꾸중들은 게 어디 한 두 번이었겠는가! 그 시절 합천읍과 장 구경을 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고, 장날이 마치 별천지 같지 않았던가! 그때 처음 맛본 풀빵에 단팥죽을 뿌린 그 맛은 지금도 잊지를 못해 장날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게를 힐끔 쳐다보며 지나치기도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참으로 많은 꾸중을 듣고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꾸중조차도 들을 수 없으니 그 시절의 꾸중이 추억이고 가슴 아프도록 그립다. 옛말에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부모님을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이 문득 떠오름은 무엇 때문일까? 부모님 말씀에 잘 따르지 않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반듯한 삶을 살지 못한 때늦은 후회와 부모님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꾸중은 누구에게나 잘 하지 못했느냐, 잘 하지 그랬어, 또는 잘하기를,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삶에서 꼭 필요한 보약이 아닐는지 하는 생각이다. 만약에 한석봉의 어머니가 공부를 제대로마치지도 않고 도중에 어머니가 그리워 찾아왔을 때 매몰찬 꾸중을 하지 않았다면 명필가로서 성공을 하였겠는가? 우리 민족의 큰 어른이시고 독립운동가 김구선생도 유년기에는 아버지 숟가락을 부러뜨려 엿을 사먹는 등 개구쟁이의 행동으로 꾸중을 들었는가하면 오십이 넘어서도, 심지어 임시정부의 주석이면서도 어머니 곽낙원 여사로부터 기꺼이 꾸중을 듣고 백배사죄하는 예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미국의 노예해방을 선언하고 제16대 대통이 되어 지금껏 미 국민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최대의 존경을 받는 링컨도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농사일을 등한시 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맞고 꾸중을 듣지 않았던가!
요즘 사회는 꾸중을 하는 어른이 하나도 없다면 희망적이지 않은 지적이라 욕먹을 일이라 참으로 드물다는 표현을 해본다. 그리고 다들 제 잘난 맛에 살고 남의 충고나 구중을 듣지 않으려고 한다. 사회에서 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의 일탈에 누가 꾸중을 하는가? 꾸중을 하면 그들이 감수나 제대로 하겠는가? 학교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교사가 제대로 된 꾸중을 하는 제대로 된 교육자가 얼마나 될까!옛말에 ‘道吾惡者 是吾師’(나의 잘못을 말해주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요즘 학생들이 스승의 꾸중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도량이 되고 풍토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최근에 꾸중을 많이도 그리워하던 차에 그러니까 지난해 12월31일 바티칸에서 가진 새해 전야 교황의 따끔하고 매몰찬 메시지를 보고 얼마나 흥분하고 가슴 뛰었는지 모른다. 그것도 꾸중의 대상이 신자나 일반사람들이 아닌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추기경, 주교, 사제들이 아니었던가! 놀랍게도 성직자들조차 일부는 썩어있다며 교황청을 15가지 질병을 앓는 인간의 몸뚱이에 비유했는데, 우리 모두가 되새겨봐야 할 절절한 것들이기에 감히 소개해 본다.
“자기는 영원불멸이고, 무엇에든 면제되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감성을 잃어버려 우는 사람 곁에서 함께 울어 줄줄도 모른다. 영적인 치매에 걸리고 지금 당장에 얽매여 주위에 벽을 쌓고 우상의 노예가 된다. 실존을 위한 정신분열증을 앓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망으로 가득해 위선적인 이중생활을 한다. 뒷담화 테러를 저지르기도 한다. 대놓고 말할 용기는 없으면서 남들 등 뒤에서 지껄여대는 비겁한 사람들의 병을 달고 산다. 윗사람을 짐짓 찬미하는 시늉을 한다. 상사의 환심을 사려고,그래서 시은(施恩)을 받아보겠노라 출세 제일주의와 기회주의의 희생물이 된다. 남들에게 무관심 하다. 남이 몰락하는 것에서 기쁨을 찾는다.‘장례식장얼굴’을 하고는 아랫사람들에게 엄하고 거칠고 오만하게 군다. 폐쇄적 집단을 만들고 그걸 등에 업고 남들을 억압하려 한다. 그 서클의 노예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결국엔 그것이 본인에게도 암이 된다. 세속적인 이익을 좇고, 그걸 과시하려 한다. 남들을 짓밟고 자신의 권리를 곱절로 만들려고 끝도 없이 애를 쓴다.그러려니 남에게 대한 중상과 비방을 일삼아 이 세상을 망가뜨린다”는 교황의 적나라한 메시지, 꾸중을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대단한 존경을 받는 성직자들이 이런 꾸중을 들을 진데 나 같은 우부우부(愚夫愚婦,평범한 사람)는 얼마나 많은 꾸중을 들어야 할까. 오늘따라 눈물이 쑥 빠지고 폐부를 찌르는 꾸중이 몹시도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