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의병도대장·영의정’ 내암 정인홍 초상, AI로 복원
400년 전 ‘의병도대장·영의정’ 내암 정인홍 초상, AI로 복원
정외출 씨, 후손 사진·실록 사료 바탕으로 내암 표준 초상 제작
조찬용 남명선생 선양회장 “의미 깊은 작업…후대 교육 자료로 활용 기대”

▲‘정운공신 1등 의병도대장 영의정 서령부원군 내암 정인홍상(定運功臣 一等 義兵都大將 領
議政 瑞寧府院君 來庵 鄭仁弘像)’이다.
우측 ‘부국강병(富國強兵)-문무겸전(文武兼全)’의 상징인 칼[劍], 즉 「경의검(敬義劍)」은 스승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이 죽기 전에 제자인 내암에게 물려줬다. 남명은 자신의 칼
집에 ‘내명자경(內明者敬,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敬)’과 ‘외단자의(外斷者義, 밖으로 행동을 결
단하는 義)’를 새긴 뒤 차고 다니곤 했었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의병도대장, 그리고 영의정을 지낸 내암 정인홍(1536~1623)의 초상이 4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통해 복원됐다.
이번 초상은 내암의 15세손인 정외출(76세, (주)미스틱타이 대표)이 주도하여 제작한 것으로, 그의 가족 사진과 고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내암의 용모를 현대 기술로 재현했다. 조찬용 남명선생 선양회장은 “이번 초상은 내암 정인홍의 표준 이미지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역사적인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초상 제작에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주요 데이터가 활용되었다.
① 내암의 후손 2인의 얼굴 사진
② 『선조수정실록』(1603년 5월 1일)
③ 『영조실록』(1729년 4월 9일)
④ 전설적 특징인 ‘중동’(重瞳, 겹눈동자)
⑤ 이옥(1760~1813)의 『봉성문여』에 기록된 내암의 상(像) 묘사
내암은 1613년(광해군 5년) ‘정운공신 1등’으로 책훈되며 도화서 화원이 그의 초상을 그렸고, 해당 초상은 해인사 아래 각사마을 띠집에 100여 년간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1728년 ‘무신변란’(조성좌·정희량의 난) 당시 초상이 불에 타 소실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영조실록』 1729년 4월 9일자 기록에는, 내암의 증손 가운데 겹눈동자를 가진 자가 있어 민심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우의정 이태좌의 상소가 있었으며, 이에 영조는 해당 인물을 ‘장살(杖殺)’하라고 명한 사건이 전한다. 이 일은 당시 경상우도 지역의 사림과 유학 세력에 대한 정치적 탄압의 일환이자, 남명-내암의 학통에 대한 서인(노론) 중심 정치세력의 억압과도 관련이 깊다.
실제로 실록에서 언급된 인물은 ‘증손’이 아닌 내암의 ‘현손(고손)’ 정근(鄭瑾)으로 추정된다. 정근은 정인홍의 고손으로, 서산정씨대동보(1998년) 상권 57쪽에 정연(정릉 장자)의 막내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전해지는 ‘중동’에 대한 전설은 순(舜)임금과 항우(項羽)도 겹눈동자를 가졌다는 고대 중국 서적에도 등장한다. 이처럼 내암의 중동 전설은 초상 복원에도 중요한 시각적 요소로 반영되었다.
한편, 복원된 내암 초상은 향후 정인홍 선생 관련 기념사업과 교육자료, 학술 전시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 ‘영의정 내암 정인홍 연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 https://blog.naver.com/antlsguraud/220898919023
/박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