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문경자
논설위원
산기슭이나 야산에서 자생하는 칡은 전국 각지에서 자라고 있다. 겨울에도 줄기가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지만 제일 끝 부분은 말라 죽는다. 덩굴속의 속껍질은 여러 가지 생활용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칡잎은 크므로 건초를 많이 얻을 수가 있어 가축의 먹이로도 쓰였다. 칡뿌리는 땅 속 깊이 들어가 그 속에는 녹말이 많이 들어 있다. 뿌리로 만든 칡차는 요즈음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기호식품이기도 하다. 그저께도 찻집에 들러 칡차 한 잔을 먹었다. 그 맛이 쌉싸래하고 단맛이 너무 좋았다. 모과차나 생강차 유자차 대추차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종류가 많지만 고향의 향수가 스며있는 칡차 보다는 못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갈색으로 보이던 줄기가 봄이면 어느새 파랗게 새 줄기를 달고 나온다. 푸른 물줄기같이 뻗어 나가는 것은 대단하다. 아무리 밟히고 베어 내도 어디서 그렇게 무성한 줄기가 나오는지 그 생명력이 경이롭다. 연한 잎은 끝이 뾰족하고 앞면은 녹색이 감돌면 뒷면은 보송보송한 은빛이 돈다.
칡꽃은 붉은 빛이 감도는 자주색 꽃이 길다란 꽃차례로 피며 편평하고 털이 난 씨 꼬투리가 맺힌다. 칡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노닐며 산새들은 노래한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이 지나가다 그림자를 드리운다. 탐스런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미들은 꽃집을 드나들며 재미있게 논다. 탐스런 꽃 타래 따다가 우리 집 거실에 커튼으로 매달아 놓으면 메마른 집안을 향기로 채워주지 않을까.
자주색 저고리에 연두색 치마를 입은 예쁜 모습의 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머니는 밭으로 뻗어 나온 칡넝쿨을 손때가 묻은 갈색 손잡이가 달린 낫으로 걷어 냈다. 줄기는 서로 엉기어 버티는 힘이 강하게 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어디론가 긴 팔을 뻗어 기어간다. 푸른 뱀이 기어가는 형상과도 같다. 푸른 뱀!
그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갸날픈 산딸기 나무 한 그루, 빨간 보석을 달고 서있다. 어머니는 산딸기 나무 가시에 찔릴까 봐 조심스럽게 가지에 달려있는 산딸기를 땄다. 푸른 칡잎을 하나 따 보석을 싸서 나에게 내밀었다. 내 작은 손은 칡잎에 가려졌다. 봄볕이 따스한 밭고랑에 앉아 산딸기를 먹다가 어머니 입에 한 개 넣어 주었다. 빨간 입술은 수줍은 듯 보였다. 어머니는 ‘달고 맛있네’ 하며 천사 같은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다 먹고 남은 칡잎에는 갈색의 딸기 그림이 남아있었다. 칡잎이 없어서면 내 작은 손바닥에 그림이 새겨졌을 텐데 어머니 지혜가 높아 보였다. 칡이 자라는 계절이 오면 어머니 모습 산 그림자 따라 온다. 어머니 떠난 자리에 지금도 칡은 줄기와 잎으로 서로 의지하며 자라고 있겠지!
이른 봄이면 칡을 캐러 길을 나선다. 야산에 오르면 마른 줄기가 갈색으로 변한 잎을 달고 봄을 기다린다. 잎이 푸를 때는 높은 성을 쌓는가 하면 다른 초목들을 감고 나무꼭대기 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가서 자라면 칡나무가 된다. 마른 것들을 베어다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줄기에서 하얀 김이 나오고 보글보글 끓으며 갈색 물이 나온다. 그때 칡 향기가 콧속을 자극한다.
친척아재는 준비해온 괭이로 양쪽다리에 힘을 주고 흙을 파내기 시작한다. 괭이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 왔다. 작은 구멍에서 서식하던 개미들이 놀라 도망을 간다. 드디어 칡의 몸체가 드러났다. 그 모양이 살찐 황소 뒷다리 같다. 아재는 횡재를 했다며 웃음꽃이 얼굴에 달렸다. 칡뿌리를 어깨에 메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신이 나서 휘파람이 저절로 나왔다. 가벼운 발걸음이 동네입구를 지나 집안으로 들어왔다. 사랑채 마구간 앞에 놓여있는 작두 위에 칡을 올려놓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하나 집어서 육포 찢듯이 찢었다. 우유 같은 물이 나오면서 달고 맛있었다. 동네 꼬마들도 나누어 주고 이웃집 사람들도 마실을 와서 같이 먹었다. 칡이 얼키설키 얽혀 살 듯이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어 먹는 정이 있어 따듯하다. 해는 서산으로 지고 할머니는 옛날이야기 주머니를 끌러 놓았다.
오랜만에 친척이 보내준 칡차 한 잔을 마신다. 칡차 향기 속에는 고향의 흙냄새가 스며들어 있다. 칡차를 마시며 안부가 궁금하여 친척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부재 중이라고 한다. 칡을 캐러 야산에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