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다르다’는 틀린 것이 아니다 – 곽노연 시인 서예작가
‘틀림’보다 ‘다름’에 익숙해지자
선거는 언제나 뜨겁다. 국민의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고, 어떤 이에게는 희망을, 또 다른 이에게는 실망을 안긴다. 특히 대통령 선거처럼 나라의 진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점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가치관과 이상, 그리고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린다. 그 과정에서 “틀렸다”, “달랐다”는 말이 마치 화살처럼 오고 간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정말 틀린 것인가? 아니면 단지 다른 것인가?”
‘틀리다’는 객관적인 오류가 있을 때 쓰는 말이다. 수학 문제의 정답을 잘못 적었을 때, 과학적 사실을 왜곡했을 때, 그럴 때 우리는 ‘틀렸다’고 말한다. 반면 ‘다르다’는 판단의 기준이 여러 갈래일 수 있는 상황, 즉 정답이 하나가 아닌 영역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정치, 종교, 예술, 그리고 사람의 가치관이 그렇다. 그런 것들은 정해진 정답이 없다. 경제를 살릴 것인지, 복지를 강화할 것인지, 한 사람의 판단은 그의 삶의 궤적과 경험, 정보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이것은 ‘다르다’고 말해야 옳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다름’을 ‘틀림’으로 착각한다.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잘못됐다고 여기고,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무시하고, 배척하는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서로의 생각을 틀렸다고 밀어내는 순간, 우리는 이해 대신 오해를 쌓고, 존중 대신 배제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정치적 다름을 수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어느 후보를 지지했는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심지어 관계를 끊는 일도 있다. 그것은 건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는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의 씨앗이 되는 모순을 우리는 지금까지 목격해 왔다.
이제 선거는 끝났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새로운 대통령이 세워졌고, 그가 어떤 길을 걸을지는 앞으로의 시간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서로가 가진 상처와 오해를 돌아보고, ‘틀렸다’고 비난하기보다는 ‘달랐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통합이 가능하다.
사실 누군가와 의견이 다르다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삶의 배경이 다르고, 배운 것도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다르다. 예컨대, 한 사람은 정의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안정과 질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우열이나 정답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시대는 다양성이 중심이 되는 시대이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는 것은 단순한 언어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사회의 성숙함을 가늠하는 척도다.
물론, 잘못된 정보나 혐오, 거짓에 대해서는 분명히 ‘틀리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신념, 선택, 의견이 내 것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틀림’으로 단정 짓는 일은, 우리가 지금껏 지켜온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다름’을 ‘틀림’으로 몰아가던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며,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다르다”는 말은 “틀리다”보다 훨씬 더 큰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것은 곧, 우리가 더 많은 의견을 듣고,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며, 더 깊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제 ‘틀림’보다 ‘다름’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지금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말할 때다. “당신은 나와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 한마디가 이 사회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2025.6.4. 21대 대통령 취임 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