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황강은 흐른다(34) 소꿉동무 – 박언숙

야로향교 명륜당 앞 늙은 은행나무
그 아래 한 나절 내내 붙어살던 동무

밑천 없어도 지천에 널린 살림살이
토끼풀꽃에 바리바리 엮어놓은 약속

날마다 하루치 밑천은 환한 햇살
소꿉놀이 알뜰하게 잠식하는 그 봄날

해질녘 어머니 부르는 소리
손 털고 달려가면 덥석 받아주던 대문

날마다 나를 부르던 너의 목소리
벌떡 일어나 손 흔들며 가버린 그날

늙은 은행나무 골목마다 빈 메아리
오두막처럼 허물어진 약속
자꾸 한 쪽으로 기우는 우리.

손국복 시인의 시평|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에는 합천향교가 있다. 1881년(고종 18)에 수해로 인하여 합천군청이 야로면으로 잠시 이전하면서 합천향교도 같이 이건 되어 현존하고 있다.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서 깊은 교화기관으로 지금도 봄. 가을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명륜당 앞에는 수령 150여년 된 거목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합천 야로가 고향인 박언숙 시인은 어린 시절 동무들과 이 은행나무 아래서 하루 종일 소꿉놀이를 하면서 놀았던 추억이 새롭다. 손목에 토끼 시계 풀꽃을 매고 친구와 한 약속은 허물어진 오두막처럼 세월 속에 무너지고 우리는 갈래지고 기울어진 골목처럼 저마다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쩌랴. 인생도 무상하고 만물이 유한한 것을.
합천 야로가 고향인 박언숙 시인은 문예지 <애지>로 등단 후 대구문인협회 편집위원,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시집으로 <잠시 캄캄하고 부쩍 가벼워졌다>를 펴 낸 중견 작가로 현재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