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암산 아리랑 (3) –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농촌에는 문화시설이 아무것도 없다. 농사철이 아닐 때 일 년에 몇 번 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상영하던 영화도 읍에 영화관이 생기자 없어졌다. 3일과 8일, 5일마다 읍에 서는 장날이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큰 출입이고 축제였다. 장날은 신작로에 흰옷 입은 사람들이 줄을 이루고 농사지어 거둔 수확물을 지게에 지거나 구루마에 싣고 가서 판다.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남자들은 막걸리를 걸치고 신작로를 갈지자로 휘젓고 육자배기 노래 부르며 귀가한다. 할머니는 장날이면 빼지 않고 쌀이나 고구마나 참깨 밤 등 무엇이라도 팔아서 간갈치에서부터 고무신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물건을 사 왔다. 장날마다 나는 할머니가 팔러 가는 곡식이나 작물을 지게에 지고 가서 이웃 정씨네 구루마에 실었다.
그해 겨울에는 청둥오리가 많이 왔다. 달이 밝은 하늘에 떼를 지어 끼룩끼룩 울며 줄지어 날아왔다. 동네 아래 정양늪 길을 걸으며 날아오고 날아가는 청둥오리 소리를 들었다. 부산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불렀던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설은 타향에’로 시작하는 <여수旅愁>를 불렀다. ‘그리워라 나 살던 곳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외치며 ‘꿈길에도 방황하는 내 정든 옛고향’ 밤길을 계속 걸었다. 순희네 동네로 가는 신작로 걸을 때 강 건너 함벽루에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순희 동네로 들어가는 땅고개까지 갔다가 돌아섰다. 그날 밤 순희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나를 보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달도 기울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순희와 읍내 극장에서 최고 여배우 최은희가 주연한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을 보았다. 6.25 전쟁에서 포탄 파편을 맞아 하반신 불구가 된 남편을 “이 생명 다하도록 사랑한” 아내의 자리에 순희를 대입시켜 보았다. 고등학교를 그만둔 상처 난 나의 젊음을 순희는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순희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 나는 처음으로 순희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날 영화가 끝나고 순희를 읍내 외삼촌 댁까지 바래다주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다.
여름이면 남정강 백사장의 모래찜질이 효험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백중날이면 100리 밖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모래에 발을 묻고 양산으로 몸을 가리고 땀을 흘린 다음 물을 마시면 몸이 날아갈 듯이 개운해진다. 저물녘에 연호사 백중 법회를 마치고 온 순희와 함께 모래찜질을 하고는 함벽루를 마주 보는 긴 버들밭을 걸었다. 나는 대암산과 함벽루를 배경으로 우리 이야기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선생님에게 보낼 수준이 못 되는 것 같았다. 순희가 보고 싶다고 했지만 부끄러운 수준이라 보여줄 수 없었다. 그때 소설가가 되겠다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백중 보름달이 중천에 떴다. 시원한 강바람이 부는 버들밭에 앉았다.
“세상은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거역할 수 없는 길이 있는 것 같애. 숙명대로 인연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도 들고. ‘공부가 쉽다’던 선생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봐.”
“…….”
“사랑은 무엇일까?”
순희는 갑자기 나에게 사랑을 물었다. 나는 지난여름 순희를 바래다주다가 땅고개를 지날 때 박꽃으로 살고 싶다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날 보름달에 비친 순희를 바라보다가 이 박꽃을 따서 내 사랑방 책상 위 꽃병에 꽂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가지는 것이 아닐까?”
순희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낙향 후 처음 보는 미소였다.
“그런 것 같애. 얘기를 해도 해도 더 하고 싶고, 만나도 만나도 더 만나고 싶고. 그래서 사랑은 슬픈 것이란 생각도 해.”
나는 달빛 아래 비치는 순희의 눈을 보았다. 눈물이 고여 있었다. 요즘 순희는 만날 때마다 눈물을 보였다.
나는 순희의 머리를 감싸고 눈물이 흐르는 눈동자를 보았다. 왜 그렇게 많이 눈물을 흘리느냐고 묻지 않았다.
달이 지는 새벽녘에 집에 돌아왔다.
가을에 들어 순희는 진주 이모촌 집에 가게 되어 당분간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평소와 달리 아무 이야기도 없이 용건만 적은 짧은 편지에 무엇인가 다급함이 느껴졌다. 순희는 계모의 반대로 J 사범학교에 가지 못한 이후 중요한 일은 진주에 사는 이모와 얘기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가을걷이에 매일을 바쁘게 지내며 순희의 소식을 기다렸다. 불안하게 소식을 기다리던 늦가을 날 순희가 나의 사촌 여동생을 통해 편지를 전해 왔다.
『오는 보름날 달이 뜰 때 대암재 돌배나무 아래 평상바위에서 만나자. 꼭 나와야 된다. 꼭!』
늦은 가을 보름날 해가 서산에 질 때 나는 하니 골짜기를 올라가서 대암재 돌배나무 아래 평상바위에 갔다. 아직 순희는 오지 않았다.
아래쪽 대암 골짜기에서 올라오는 순희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내려가 놀란 얼굴로 순희의 손을 잡았다. 둘은 평상바위에 앉았다. 순희는 보름달이 중천에 뜰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사랑은 가지는 것이라고 했지?”
나는 순희의 눈을 보았다.
“…….”
달빛이 교교히 내렸다. 순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너를 가질 수 없게 되었어. 그렇게 살아야 하게 되었어.”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인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말이었다.
“나 내일 떠날 거야. 안 가지는 것이 가지는 것과 같은 세상으로!”
순희를 바라보았다. 순희의 얼굴은 너무 슬퍼 보였다. 달빛 아래 순희는 하얀 박꽃이었다. 그 박꽃에 이슬이 가득했다. 가련한 생각이 가슴에 치밀었다.
순희는 나를 와락 껴안았다. 순희는 통곡했다. 목을 놓아 오래 통곡했다. 순희의 울음에서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이 전해졌다.
나는 달빛 아래 박꽃같이 가련한 순희가 가는 길을 알지도 못했다. 달빛이 교교히 우리의 가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을 덮었다.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말없이 시간이 흘렀다.
서산으로 달이 지고 있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대암산 고개로 넘어간다
서산에 지는 달은 지고 싶어 지나
널 버리고 가는 나는 가고 싶어 가나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대암산 고개로 넘어간다
순희는 조용히 노래하고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작게 말했다.
“우리 저세상에서 만나자.”
“…….”
순희는 대암재를 내려갔다.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바라만 보았다. 순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보름달이 멀리 서쪽 산 위에 가 있었다.
돌배나무 아래의 밤이 있고 난 후에 한 달 정도 지나 사촌 여동생이 순희가 삭발하고 해인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그 후 나는 밤이면 막걸리 마시고 별빛을 따라 밤길을 떠돌며 많이 울었다. 달이 뜨면 박꽃 같은 순희를 생각하며 정양늪과 남정강변을 술에 취해 밤새 걸었다. 나는 또 다른 좌절의 밤을 한없이 울었다. 내가 소설을 쓰는 길은 순희와 함께 사라지고 나는 또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공부가 쉽다’던 선생님에게 편지하고 다음 해 학교로 돌아갔다. 지금 여기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다음에 계속)
《최후진술》을 출간하며 작가로 변신한 강만수 전 장관이 고향 합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 《대암산 아리랑》을 발표했습니다. 오는 11월 7일 합천에서 북콘서트도 개최할 예정인 강만수 작가는 고향 발전과 향우들을 위한 마음으로 이 소설의 연재를 허락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