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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향우 1호 기부자 명성 이어” 강원수 회장, 정가대회장 맡아 문화 창달 앞장 __강원수 합천전국정가경연대회 대회장 인터뷰

“재외 향우 1호 기부자 명성 이어” 강원수 회장, 정가대회장 맡아 문화 창달 앞장

_강원수 합천전국정가경연대회 대회장 인터뷰

“재외 향우 1호 기부자 명성 이어” 강원수 회장, 정가대회장 맡아 문화 창달 앞장 __강원수 합천전국정가경연대회 대회장 인터뷰

Q1: 강 회장께서는 오는 10월 18일 토요일 11시 합천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될 <제6회 합천전국정가 경연대회>의 대회장을 맡았다. 평소 경제계에서 활동했는데, 전통 음악 분야 대회장을 맡은 계기가 궁금하며 소감 한 말씀 부탁한다.

A1: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스스로는 한국 전통 음악인 ‘정가(正歌)’라는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회장직은 고향 동기인 임장섭 교육장 등 지역 관계자들의 강력한 권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지역 관계자들이 정가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고향 동향 사람으로서 그 노력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대회장 자리를 수락했다. 비록 전문 지식은 부족하지만, 지역 문화 보급과 후학 양성이라는 취지에는 깊이 공감한다. 그동안 고향 발전을 위해 봉사해 온 것처럼, 이번에는 문화 창달 분야에서도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포부다. 이 대회가 합천의 자랑스러운 전통 문화를 전국에 알리고, 문화 강군 합천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지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

고향사랑기부 1호 500만 원 쾌척, 가족과 함께 총 1,500만 원 기탁

Q2: 강 회장은 그동안 고향 합천 발전을 위해 많은 기부와 봉사를 해왔고, 2021년 ‘자랑스러운 합천인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고향사랑기부제가 생기자마자, 합천군 제1호 기부자가 되는 등 지속적으로 헌신 봉사해왔다. 또한 가족들 모두 고향사랑기부제에 동참한 것으로 안다.

A2: 2021년 ‘자랑스러운 합천인상’ 대상을 받은 것은 영예로운 일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더욱 고향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고향사랑기부제는 2023년 1월부터 시행됐는데, 재외 50만 향우 중 가장 먼저 제1호로 최고 금액인 500만 원을 선납했다. 지방의 재정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 큰 효용가치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내인 박순복 씨가 100호 기부자가 되었고, 이어서 자녀들(삼 형제)도 참여하여 가족이 총 1,500만 원을 기탁했다.

‘고향 사랑 나라 사랑’ 어머니 훈육 간직…30년간 장학사업 등 봉사

Q3: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깊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A3: 특별한 사연은 없다. 6.25 동란을 겪고 초근목피하던 시절 빈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굳이 계기를 꼽자면, 1962년 객지로 유학을 떠날 때 어머님께서 “부디 타향에서 살더라도 고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고향 사랑이 나라 사랑이다’라고 준엄하게 훈육하셨는데, 나는 이 말씀을 늘 간직하며 살아왔다. 고향의 집과 선영을 돌보며 자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애향심이 깊어졌다. 이 마음을 담아 2000년대 초 고향 마을 입구 표지석에 ‘고향 사랑 나라 사랑’이라는 문구를 새기기도 했다.

Q4: 강 회장은 1980년대부터 30여 년간 꾸준히 고향을 돕는 활동을 이어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봉사와 기부를 해 왔는지, 간추려 알려달라.

A4: 1980년대부터 30여 년간 고향을 돕는 일은 나의 삶의 원칙이었다. 주요 활동으로는 고향 마을 상수도 및 안길 확포장 지원, 마을 입구 표지석 건립, 본가 앞 양어장을 메워 주민 휴식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교육 발전 기금과 수해 의연금을 합천군에 정기 기부했으며, 2022년에는 월남 참전자회를 통한 이주여성 가정 돕기에도 참여했다. 특히 후학 양성에 집중해, 대양초등학교 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2012년부터 모교 입학생과 졸업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교육 기자재 설치를 지원해 왔다. 작은 힘이지만 고향 사랑을 이어가는 것이 나의 보람이다.

Q5: 강 회장은 현재 ㈜창재건설 회장으로 성공적인 기업인의 길을 걸어왔다.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사업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A5: 대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대 초 어려운 시절 부산으로 유학을 떠났고, 주경야독했다. 1970년대 대구로 올라와 공무원보다는 자영업을 선택하여 냉난방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30대에 기업을 세워 안정된 생활을 했다. 현재 창재건설, 원재건설, 원플러스원금융 등을 운영하며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강만수 장관-심의조 군수 협력 도와, “남부내륙철도 등 합천 전성기 이끌어”

Q6: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심의조 군수와의 협력으로 합천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당시 합천 발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경험에 대해 상세히 말해달라.

A6: 심의조 군수가 합천을 위해 ‘불도저’처럼 일하던 그때가 합천 발전의 전성기였다고 회상한다. 특히 중앙 예산 확보가 중요하던 시기에, 나 역시 고향 합천을 위해 내가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힘을 보태려고 했다. 강만수 장관이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심 군수와 장관 사이의 강력한 연결고리 역할은 필수였다. 군수가 합천 현안 사업을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고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내가 중간에서 최선을 다해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덕분에 수십억 원 규모의 대형 사업들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 성과들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자랑스럽다. 남부내륙고속철도의 추진에 장관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고, 함양-울산간 고속도로 같은 중요 인프라의 초기 단계부터 노력했다. 또한, 국도 36호선 포장이나 합천읍 공단교 설치 같은 지역민 숙원 사업뿐만 아니라, 축구장, 체육관 등 많은 체육 시설이 그때 집중적으로 건설되면서 합천의 지도가 완전히 새롭게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심 군수의 열정과 장관의 결단, 그리고 나의 작은 노력이 합쳐져 이룬 결실이다.

Q7: 현재 합천군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과제는 무엇이며, 지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7: 과거에는 중앙과 지역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기운이 넘쳤으나, 지금은 지역 발전 동력이 약간 떨어진 느낌이 든다. 현재 합천의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합(和合)이다. 지역 사회에서는 각계각층간의 단결이 부족하여 분열되어 있는 상태다. 나는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응집력을 기르고, 서로 합심 협력하는 호혜의 정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지도자들 역시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심의조 군수처럼 열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여 지역민들을 이끌어야 한다.

지금은 화합이 최우선 과제” 수해 주민이 하루빨리 일상 복귀하길 기원

Q8: 회장 개인적으로도 매주 고향을 찾는 등 고향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들려달라.

A8: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다른 곳 대신 어김없이 아내와 함께 고향을 찾아 선영을 돌보고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는 고향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고향 발전을 위한 봉사와 노력에 열과 성을 다할 것이다. 아울러 최근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합천군 주민들과 농민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힘든 시기이지만, 용기를 잃지 마시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모든 분이 힘을 합쳐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담:박황규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