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뉴스홈

수필| 우리 곁을 떠난 친구들… (1) – 이호석 수필가

친구란 사전적 의미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는 ‘가깝고 오래 사귄 사람’뿐만 아니라 나이와 성별도 초월하고, 동식물을 포함하여 나의 인생에서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추억거리를 제공해준 대상 모두를 친구로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내가 태어나고 70평 생을 살아온 곳은 읍소재지 가까운 농촌 마을이다. 잠깐 마을의 정황을 살펴보면 한때는 80여 가구가 살았고 한 가구에 보통 3대가 함께 살면서 마을 인구가 400여 명이나 되었다.
1970년대 초부터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기 시작하였고, 이때를 즈음하여 국가에서 가족계획이니 산아제한이니 하는 신종 용어를 앞세우며 강력한 인구 억제 정책이 시행되어 인구가 차츰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불과 5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마을 인구는 겨우 70여 명이며 거의가 고령자들이다.
나의 생애 동안에도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또래와 손아래 동생뻘 되는 장년들까지 곁을 떠난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들 중에는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던 사람도 있었고, 가끔 의견 충돌을 하며 미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같이 마을 사람들이 급격히 줄고 보니, 존경하고 좋아하던 사람이나 미워했던 사람이나 떠난 사람 모두가 나름대로 귀하고 그리운 사람이다. 이들이 살아 있을 때는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만나기만 해도 즐거웠고, 미운 사람은 조금의 잘못에도 험담하고 심술을 부리기도 하였다. 제법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와 사이좋게 지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7~80년 대까지만 해도 마을의 가정마다 어린애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이 골목을 뛰어다녔다. 젊은이들이 골목길을 나다니면 어른들을 만나 인사하기에 바빴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또 그때는 어느 집에서 경조사가 생기면 온 마을 사람들이 마치 내 집 일 같이 함께 하면서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하는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었다.
지금 마을에는 아이들이나 젊은이는 거의 없다. 어른들도 그리 많지 않아 낮이나 밤이나 마을 안길을 돌아다녀도 사람 만나기가 어렵고 마을 전체가 썰렁하고 외로움에 묻혀 있는 것 같아 쓸쓸하기 짝이 없다. 대다수 가정에는 고령의 할아버지 할머니 한두 사람이 살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집은 바로 공가(空家)가 되고 한 가구가 없어져 버리면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서글픔과 외로움이 더욱 짙어진다.
어떨 때는, 예전과 같이 말썽꾸러기 아이들이나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하며 마을을 시끄럽게 하던 젊은이들이라도, 아니 미워할 사람이라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예전에는 함께 사는 마을 사람들이 좋은 줄도, 귀한 줄도 모르고 무덤덤이 살았다. 지금은 어쩌다가 한 집이 마을로 이사를 오면 그저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다.
그동안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사람들 뿐만 아니다. 예전에는 웬만한 농가에서는 소 한두 마리와 돼지, 닭 몇 마리씩은 가족 같은 마음으로 길렀다. 소는 논밭 다음으로 가장 큰 살림 밑천이었고, 농사짓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농가의 재산목록 제1호 자리를 차지했다. 돼지는 키워서 팔아 가용에 보태기도 하지만,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는 가장 귀중한 제물이 되기도 하였고, 닭은 키워서 팔아 가용으로 쓰기도 하지만 사위나 귀한 손님이 오면 제일 먼저 밥상 위에 오르는 최고의 대접 거리였다.
가축들은 항상 집 울안에서 가족과 같이 살았다. 가축의 배설물을 모아 거름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농가에 들어가면 곳곳에서 거름 냄새를 향수처럼 맡아야 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이 들녘을 지나다가 이 거름 냄새를 맡으면 고향 냄새라고 하며 잠깐이나마 향수에 젖기도 한다.
가족 같은 가축에게는 때가 되면 먹이를 챙겨줘야 하고, 수시로 축사도 청소해 주고 겨울이면 추위도 가려줘야 했다. 이들 모두가 농민들의 삶에서는 가족이면서도 친구들이었다. 지금은 이 친구들 모두 우리 곁을 떠났다. 소나 사람이 하던 농사일은 모두 기계로 하고, 닭이 차지하던 귀한 손님 접대 거리 반찬 고기는 마트나 식육점에서 항상 기다리고 있으며, 농촌 곳곳에 건립된 대형 축사에서 가축을 대규모로 길러 국민의 육류로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과 농가의 가축 외도 이들 못지않게 우리에게 갖가지 추억을 만들어 주며 친구처럼 지낸 동식물도 많이 우리 곁을 떠났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