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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풍경 – 右岩 강기수

내가 살고 있는 장은 큰 장이다. 2일과 7일이 장이 되는 곳은 1950년 당시 도매시장 같은 기능까지 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외지에서도 장에 많은 사람이 왔다. 특히 4개 군 10여 개 면의 주민들이 이곳을 하루 일로 삼고 30리도, 50리도, 걸어서 왔다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여 종종걸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원거리 손님이 많았다.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은 장날은 응당 장에 다녀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할 일이 없는 장에 볼일 보러 간다”라는 농담이 있을 만큼, 도시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사기 위해서도 가지만, 온갖 물건 구경도 하고, 시장은 농촌 사람들에게 사교의 장이기도 했다.
여인들은 시장에 간다는 핑계로 자기 형제들이나 가까운 친척 또는 옛 친구들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또 직접 짠 베를 팔거나, 삼이나, 목화를 사기 위해 가기도 했다. 남자들은 소, 염소, 닭이나 돼지, 개 등의 가축이나 나무, 채소 등을 팔기 위해서였다. 사돈을 만난다는 핑계로 막걸리도 한잔하고, 돼지국밥도 한 그릇 사 먹기 위해 가는 이도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 (1950년 전후) 보고 지나다닌 장날은 정말 시끌벅적했다. 그리고 없는 것이 없을 만큼 풍성했다.
잡화점에는 바늘과 실, 단추와 공책, 연필 등, 가정에 사용하는 필수품과 학생들이 사용하는 학용품까지 가짓수도 많았다. 쌀 전과 잡곡전은 콩, 깨, 녹두, 팥 등 오곡이 넘쳐났고, 베 전에서는 삼베, 무명베, 삼, 목화 등도 있는가 하면, 비단도 이곳에서 살 수 있었다.
생선을 파는 어물전이 있고, 소전에는 암소, 수소, 새끼를 팔기 위해 몰고 온 어미 소와 송아지, 돼지 전은 새끼 돼지와 어미돼지를, 닭 전에는 닭과 오리, 토끼와 염소, 개 등을 그곳에서 사고팔았다. 나무전은 갈비, 장작 등으로, 옹기전에는 각종 그릇이 진열되어 있었다. 또 양잿물을 파는가 하면, 두부에 사용하는 간수(또는 숯)를 파는 전, 신발전이 있는가 하면 신발을 띄우는 곳도 있었고, 신발을 깁는 곳도 있었다.
솥과 냄비를 떼우는 땜장이, 양산 우산을 고쳐 주는 사람, 사기그릇이나 옹기에 테를 메어주는 이도 있었다. 신명 나게 가위질하며 호객행위를 하며 손님을 불러 모았고, 우리 아이들은 그 달콤한 소리에 군침을 삼키게 하는 엿장수.
시장에는 점포가 없는 난전도 많았다.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물건을 파는 곳인데, 하얀 쌀밥을 수북이 담아 팔기도 하고, 큰 가마솥에 돼지고기가 복새를 넘으면서 보글보글 끓으며, 냄새를 풍기는 돼지 국밥집.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 신선한 채소와 과일도 팔았다. 철 따라 수박이 나면 수박 전이, 참외가 나면 참외 전이 열렸다. 그때그때 생산되는 것에 따라 장터의 얼굴이 바뀌면서 난전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였다.
그 시절엔 사과나, 포도, 밀감이나, 단감, 바나나 등은 없었다.
사과와 배는 제사에 쓰이는 제수용으로 어물전에서 제수용으로 팔았다. 우리가 알기로는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 때 사용하는 과일로 알았으니까, 일반 과일로는 파는 이도 없었고, 사는 이도 없었다.
우리들은 학교 가는 길이 시장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등교할 때는 이른 아침이라 시장형성이 되지 않아 장사들만 물건을 펴느라 바쁘고, 학교에서 늦게 퇴교할 때는 장사들이 짐을 챙기기도 하였다. 이효석 님이 쓴 “메밀꽃 필 무렵”의 여름장 오후처럼 파장 같은 분위기일 때도 있었다.
특히 토요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일찍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보통의 날의 시장은 시장 복판이 비좁아서 내가 밀려다녀야 하였고, 몸을 틀어 비켜와야 할 만큼 복잡했다. 장사들은 자기 물건 사라고 외치고, 오랜만에 장에서 만난 친척 친구들은 인사하느라 바쁘고 사돈, 친구 대접하느라 음식집에서 돼지국밥이나 소 국밥으로 막걸릿잔을 나누는 사람, 형형색색 가지가지였다.
어린 우리가 신기하게 둘러서서 구경하다가 끌려 나오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마루방” 하는 곳이다. 즉 돈 놓고 돈 먹기이다. 지금으로 비교하면 로또 복권 번호(초창기에) 맞추기와 비슷한 것이다.
우리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구경하고 있으면 상이군인 아저씨가 우리들을 끄집어냈다. 그 아저씨들은 손이 없고 인조로 만든 갈퀴 같은 손으로 우리들의 목덜미를 끌어당긴다. 우리들은 기겁하면서 끌려나와야 했다. 거기에다 검은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으니까 무서웠다.

그곳에서 열 배로 늘리려고 나무를 팔고 와서 번호지를 산 사람, 베를 팔아 허탕하는 사람, 돼지 새끼를 판 사람, 송아지를 판 사람, 별의별 사람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주변을 맴돌다 막걸리 한잔으로 마음을 달래다가 옆 사람과 시비하여 싸우기도 한다. 그러다가 해가 지면 힘없이 뭐라고 구시렁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곳은 큰 나무 원판에 1.2.3. 하여 10이 있고 0번이 있다. 투자하는 사람은 1에서 10번까지 한 번호씩 골라 살 수 있고 0번이면 마루방을 돌리는 쪽에서 다 갖는다. 그 판에 맞은 번호 외에는 나머지 모두 마루방을 돌리는 쪽에서 갖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10배를 주므로 칸칸이 산 돈은 다 돌려주고 0번이 맞으면 자기 몫이라고 말하지만, 돈을 잃은 사람이 많다. 그러니까 돈을 딸 확률은 10대 1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 번호 하나 외에는 전부가 마루방을 돌리는 쪽으로 가니까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표를 일정한 시간 동안 팔고는 마루방을 돌린다. 신나게 돌고 있으면 저쪽에서 화살을 쏘아 딱 하는 화살이 꽂히는 소리가 나면 브레이크를 잡아 원판을 세운다. 화살이 꽂힌 글자판이 보이는 순간 주시하던 많은 사람의 표정은 두 가지로 바뀐다. 한쪽은 번호표를 들고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사람, 한쪽은 어깨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은 표정에 실망의 무릎을 치는 사람.
그렇기도 할 것이 먼 산에서 나무 한 짐 하여 짊어지고 먼 길 와서 팔고는 열 짐의 나뭇값이 되기를 기원했으나, 나무 한 짐이 무산되어 날아가 버리는 순간 집에 가서 뭐라고 변명할 것이며, 갈치 한 마리 사고 등잔불을 켤 석유병이라도 살 돈을 한 방에 날렸으니 빈 지게를 지고 터덜터덜 집에는 어떻게 들어갈까?!
 X 번이 맞았다고 하면 그 번호에 맞은 사람은 열 배 정도의 돈을 받으려 몰려가지만 그렇지 못한 나머지 9개 번호는, 빈 번호표를 찢어버리거나 허탈해하면서 빠져나오거나 다시 번호표를 산다.
이것은 상이군인 단체에서 운영했다. 그들은 6.25 전쟁 때 팔다리를 잃고 일할 곳이 없으니 먹고 살길이 없음을 동료들과 모여 이와 같이 돈벌이를 하였다. 부정하였지만 그들에게 보호해 줄 보훈청이 없는 그때, 정부에서 버려두었던 단체였다.
지금의 시장은 그때 보았던 시장에 비하면 너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내가 보았든 시장은 푸짐하고 넉넉했다.
비록 돈이 없어서 마음대로 살 수는 없었지만, 막걸리 한잔으로 족했던 그때의 시장이 그립다.
지금의 시장은 사람이 없어서 한산하고 냉랭하고 허전하다. 마을버스가 오가는 시간을 맞추어 왔다가, 가는 시간 맞추어 장꾼들이 가버리니까 시장은 사람이 없고 항상 헐렁하다.
 
*<주>마루방: 글자판을 돌려 숫자 맞추기, 로또 판 돌릴 때와 비슷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