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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때 울었다 – 右岩 강기수

MBC 아침 방송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사회자 조영남 씨와 최○○ 씨의 대담 중 “아버지는 어떤 때 울까?”라는 화두가 나왔다. 조영남 씨는 “우리 아버지가 우는 건 본 적이 없다. 얼굴이 벌게지는 건 봐도 우는 모습은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랬겠지.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그렇다면 나는 언제 울었을까. 나는 운 적이 많다. 남들이 보았든 보지 않았든 상관없이,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아버지가 된 후 눈물을 흘린 첫 번째는 딸의 결혼식 날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던 그 순간, 사위에게 손을 건네주고 돌아설 때 울컥 눈물이 북받쳤다.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이 눈물을 어쩌나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겨우 버티고는 자리에 앉아 눈에 뭐가 들어간 척하며 슬쩍 눈물을 훔쳤다. 큰딸 때도, 작은딸 때도 마찬가지였다. 왠지 그 순간이 ‘마지막’인 듯한 아련함에 가슴이 메었다.
최근에는 책을 읽다가 자주 운다. 김정현 씨의 소설 『아버지』를 읽으며 그랬다. 10년 전에도 그 책을 읽고 울었는데, 얼마 전 다시 읽으며 또 울었다. “하얀 빛깔의 진주목걸이와 반지, 고왔다. 수줍은 사람. 그걸 직접 전해주지 못하고 그렇게 숨겨두셨군요. 얼마나 감추느라 애썼어요. 당신 손으로 목에 걸어주고 손에 끼워줬으면 더 고왔을 텐데요…” 싸늘해진 한정수의 손에 쥐여 있던 유품을 받은 아내 김영신은 편지에 이렇게 써두었다.
“사람 냄새가 그리운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오. 메마른 이 세상, 우린 사람으로 남읍시다.”
또, 딸 지원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한 자리를 남겨달라고 시간 날 때마다 마당 한편에 가서 조용히 기도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통학차 정원이 25명이라 차 번호가 그 숫자를 넘으면 타지 않고, 서서 손잡이에 매달린 채 딸이 그 안에 들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그때. 그리고 언젠가 딸에게서 받은 편지 한 장.
“아버지, 전 지금 당신에게 몹시 실망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못 이룬 꿈에 대한 한풀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를 품에 안고 다니며 읽고 또 읽는 아버지. 그 마음을 읽으며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박범신의 소설 『소금』을 읽으면서도 울었다. 주인공 선명우의 첫사랑 세희가 딸들에게 유품을 전해달라고 남기며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혹시 돌아가시고 나서라도 누가 찾아오면 이걸 전해달라. 그 사람 이름에 ‘명’ 자가 들어 있을 거라고 했어요. 성함에 명 자 들어 있죠? 선명우… 그럼 맞네요!”
“나, 엄마의 친딸 아니에요. 엄마는 평생 시집간 적 없어요. 전 입양된 딸이에요.”
그 말을 들은 선명우가 유품을 들고 돌아서는 뒷모습을 상상하면, 그가 얼마나 울었을지 짐작이 간다. 봉제공장 여공으로 살아가며 답장 쓸 시간조차 없어 실밥을 뽑아 씹으며 선명우의 사랑을 삼켰던 그 여인. 평생을 한 사람만 품고 살았던 그 세희.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마음이 찡해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죄스러운 마음에 중얼거린다.
“혹시 여기루 올랑가도 모린게…”
아들과 딸들이 조를 짜서 실종된 엄마를 찾아 나서는 동안, 정작 아버지는 함께 나서지도 못한 미안함에 아들의 집 방에 머무는 것조차 죄스러워, 차라리 집으로 내려와 그렇게 혼잣말을 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형님을 위한 비문을 짓기 위해 가회면 등곡의 호당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몇 차례 찾아뵌 적이 있었다. 비문 초안을 원고지에 써서 병상에 누워 있는 형님께 읽어드릴 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야윈 손을 맞잡고 같이 울었다. 그때 형님은 예순둘, 나는 마흔여덟이었다. 벌써 24년 전의 일이다. 이뿐이겠는가. 아버지라는 준엄함을 지키기 위해, 위엄을 잃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울지 않는 척하지만, 실은 다 울고 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골목 어귀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외진 방 한편에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울고, 또 운다.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를 보면서, 이웃의 슬픔을 듣고, 혹은 행복한 순간에도, 감정이 북받치면 코끝이 시큰해지며 울컥하는 것, 그게 사람이고, 남자고, 아버지다. 겉으론 담담해 보여도 속은 얼마나 여린지 모른다.
아버지란, 참으로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