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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送舊迎新), 문을 닫고 문을 여는 일 – 곽노연 시인·서예가·대병대지生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우리는 종종 “송구영신”이라는 말을 꺼낸다. 오래된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시간은 갑자기 의례(儀禮)를 입는다. 송구는 보내는 일이고, 영신은 맞이하는 일이다. 단순히 달력이 한 장 넘어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우리는 굳이 두 개의 동작으로 나눈다. 마치 문을 닫고 나서야 새 문을 열 수 있다는 듯이 보내고, 그리고 맞이한다.

송구(送舊)는 아쉬운 것이다. 돌아보면 한 해는 늘 단정하지만은 않았다. 계획했던 일은 빗나가고, 우연히 시작한 일이 오래 남기도 한다. 잘한 일보다 아쉬운 일이 더 또렷하고, 기뻤던 날보다 무심히 흘려보낸 날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송구는 쉽지 않은 것이다. 마음 한쪽에 걸린 미련과 후회가 마당 가운데 흩어진 거름처럼 남아 발걸음을 붙잡아 세운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챙기지 못한 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채로 보내야만 한다.

송구(送舊)
낡은 마지막 달력 한 장, 바람에 몸을 벗는다
잔기침처럼 남아 있던 하루하루
말하지 못한 가슴 아린 말
서랍 속에서 조용히 먼지가 된다
잘한 일은 작게 접어 주머니에 넣고 부끄러웠던 장면들은 눈(눈) 아래 덮어 둔다
말 없는 시간 앞에 우리는 고개를 숙인다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그리고
충분히 살지 못했어도 끝까지 버텼다고
해는 저물고 어제는 마침내 우리의 손을 놓는다.
영신(迎新)은 더 조심스럽다. 새해는 늘 깨끗하고 희망찬 얼굴로 찾아오지만, 이를 맞이하는 우리는 그렇지 않다. 지난해의 피로를 그대로 안고 문 앞에 서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새해에 희망, 다짐, 계획 같은 단어들로 이름을 붙인다. 이것은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라기보다는 계속 살아가겠다는 의지이자 약속에 가깝다.

영신(迎新)
아직 낯선 아침이 문 앞에 서 있다
새 달력의 종이는 눈부시게 흰 얼굴
조심스레 숨을 들이마시면
희망은 언제나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한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조금 더 우리답게
실패도 함께 오겠지만 덜 숨기고
웃음이 오면 이번에는 오래 붙잡아 보자
시간은 다시 말이 없지만
우리는 먼저 손을 내밀어 보자, 와도 괜찮다고
준비가 덜 되어도 함께 가자 하는데 이미 새해는 내 옆으로 한 발짝 와 있다.

송구영신의 의미는 결국 시간에 대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후회만 끌어안지 않겠다는 결심(決心), 기대만 앞세우지 않겠다는 절제(節制), 보내야 할 것은 보내고 맞이할 것은 맞이하는 것. 모든 것을 새것으로 만들겠다는 욕심(慾心)은 내려놓고, 해마다 조금씩 달라져 가는 것에서 송구영신의 의미를 다시 배우니 그저 감사하다.
문득 생각해 보니 송구영신은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는 방식과 닮아 있다. 어제의 우리를 보내고 오늘의 우리를 맞이하는 일, 실패를 덮지 않고 성공에 취하지도 않은 채 다시 일어서는 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가 늙어가지만, 삶은 시간과 함께 가게 되는 것이다.
또 한 번 송구영신을 읊는다. 완벽하게 보내지 못한 것들을 안고, 완벽하지 않을 내일을 향해,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체득(體得)하기를 바라면서 새해 아침을 맞는다.
병오년(丙午年) 새해에도 합천인(陜川人) 여러분의 건행(健幸)과 합천신문의 발전을 청원(請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