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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야옥전고분군 답사 후기- 곽노연 시인, 서예가

고분 유물 350여 점 상설전시 합천박물관 관람

삼국시대 낙동강 서쪽 영남지역에 있던 금관가야(金官加耶), 대가야(大加耶), 아라가야(阿羅加耶), 소가야(小加耶) 등 작은 나라가 대략 4세기에서 6세기 중엽까지 존속한 가야연맹을 통칭 가야라 한다. 합천 옥전지역에도 대가야의 영향권에 속한 지방국인 다라국(多羅國)이 존재했음이 옥전고분 발굴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가야는 각 지역을 중으로 존속하며 무덤군을 남겼는데 금관가야의 중심지인 김해의 대성동고분군, 대가야의 중심지인 고령 지산동고분군, 아라가야의 중심지인 함안 말이산고분군, 소가야의 중심지인 고성 송학동고분군과 합천, 창녕, 남원 고분군을 모두 합쳐 ‘가야고분군’이란 이름으로 201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가야 고분의 양태는 덧널무덤〔木槨墓〕, 구덩식 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墳〕,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순으로 변천한다.
지난해 11월 말 문중 시향 참제 후 합천 옥전고분을 답사하고 가야유물 350여 점을 상설전시한 합천박물관을 방문하였다.
합천박물관(경상남도 합천군 황강옥전로 1558)은 가야시대 다라국의 중심지였던 합천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박물관이 자리한 곳 자체가 다라국 지배층의 무덤인 옥전고분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 관람은 곧 현장 답사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1. 황강 유역과 가야 소국의 형성
    합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을 따라 형성된 교통과 물산의 요지로, 고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지역이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속에서 가야의 여러 소국 가운데 하나인 다라국이 성장할 수 있었으며, 옥전고분군은 그 중심에 자리한 지배층의 공동 묘역이다.
    4세기 초부터 6세기 전반까지 조성된 옥전고분군에는 목곽묘에서 시작해 석곽묘, 횡구식 석실묘, 횡혈식 석실묘로 이어지는 묘제의 변화가 확인된다. 이는 다라국이 단기간에 형성된 소국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정치 체계와 사회 구조를 발전시켜 온 국가였음을 보여준다.
  2. 옥전고분군 발굴과 지배자의 세계
    고분 내부에서는 토기류, 철제 무기, 갑옷과 투구, 말갖춤, 그리고 화려한 장신구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는 무덤이 단순한 매장 공간이 아니라, 생전의 위계와 권력을 사후 세계까지 이어가려는 상징적 공간이었음을 말해준다.
    특히 고분에서 발견된 2,000여 개가 넘는 구슬과 옥마저석은 다라국이 장신구를 외부에서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제작했음을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다. 세공기술의 수준과 미적 감각은 가야문화의 정교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3. 최고 지배자의 상징, 용봉문양 고리자루큰칼
    옥전고분군 출토 유물 가운데 가장 강렬한 존재는 단연 용봉문양 고리자루큰칼이다. 고리자루큰칼은 왕릉급 무덤에서만 확인되는 위세품으로, 고리 안에 새겨진 문양은 무덤 주인의 정치적 위상을 상징한다.
    고분에서 출토된 네 자루의 용봉문양 고리자루큰칼은 한 무덤에서 확인된 사례로는 유례가 없으며, 다라국 최고 지배자의 권력 집중과 상징체계를 바로 보여준다. 용과 봉황 문양이 동시에 표현된 칼자루는 왕권과 신성성을 함께 담아낸 상징물로서 관람하는 나의 시선을 압도한다.
  4. 철기·무장 문화와 국제성
    옥전고분군에서는 철제 갑옷 다섯 벌과 투구 열세 점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가야 고분 가운데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규모다. 특히 금동으로 제작된 화려한 투구는 고구려 계통 투구와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 다라국이 북방 문화와도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말 투구는 동아시아 전역에서도 극히 희귀한 유물임에도 불구하고, 옥전고분군에서는 다섯 점이나 확인되었다. 이는 다라국이 기병 중심의 군사력을 갖춘 역동적인 정치 집단이었음을 생생히 증언한다.
  5. 장례 의식과 권위의 연출
    관 아래에 수십 개의 도끼나 칼을 깔아 무덤 주인의 부와 권위를 과시한 장례 방식은 옥전고분군 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고분에서 관 아래에 130여 개의 도끼를 배치한 모습은 지배자의 경제력과 통치력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면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장례 관습은 고구려 문화의 영향과 함께 다라국만의 독자적인 권력 표현 방식이 결합한 결과로 해석된다.
  6. 합천박물관 전시와 공간 연출
    합천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옥전고분군을 건축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봉토를 형상화한 외벽, 돌덧널(목곽묘)을 닮은 전시실 구조, 실물 크기로 복원된 고분은 관람객이 역사 속으로 직접 들어가게 만든다. 중앙홀에 투영되는 용봉문양 고리자루큰칼의 그림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처럼 느껴지며, 박물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고분이 된 듯한 인상을 준다.
  7. 다라국 이후, 합천의 역사적 전개
    별관 역사관에서는 다라국 멸망 이후에도 이어지는 합천의 역사가 펼쳐진다. 신라가 백제의 침공에 대비해 구축한 대야성은 합천이 삼국 간 각축의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
    고려 때에는 왕비의 출현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왕사 무학대사가 조선개국의 단초를 제공하였으며 남명 조식과 내암 정인홍 같은 거유를 배출하며 학문과 사상의 중심지로 자리했고, 임진왜란 의병 활동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는 시대의 고비마다 앞장선 합천인의 기개가 또렷이 드러난다.
  • 종합 소감
    합천 가야고분군과 박물관 관람은 유물을 보는 시간이 아니라, 다라국 지배자의 숨결과 합천 사람들의 긴 시간을 함께 걷는 경험이었다.가야의 정치·군사·문화가 한 공간에 농축되어 펼쳐지는 순간마다 감탄이 이어졌고, 합천이 왜 가야사의 핵심 무대였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뜻깊은 관람이었다. 합천 출신이란 자부심이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202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