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배려석 – 문경자 수필가
전철안에 임산부 배려석이 있다.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핑크카펫 임산부 배려석입니다. 분홍색으로 꾸미고 양보를 권유하는 안내 문구를 만들어 일명 ‘핑크카펫’을 만들었다. 배려석은 마련되어 있었지만 별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임산부에게 양보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핑크카펫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차원에서 ‘임산부 배려존’ 표시를 하였다. 한눈에 봐도 일반좌석과 구별이 되어있었다. 좌석 뒤편에는 눈에 잘 띄는 분홍색으로 제작된 임산부 스티커가 붙어있다. 바닥 역시 핑크색으로 도색이 되어 있으며 임산부 배려존임을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까지 또렷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앞으로 태어날 새 생명과 이를 잉태한 임산부 모두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아직도 양보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임산부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노약자와 같이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특히 초기 임산부는 겉으로 보기에는 판단이 어려워 사람들에게 배려 받지 못했다. 유산의 위험성이 큰 시기이므로 반드시 심신의 안정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임산부를 위해 마련한 핑크 카펫이 눈에 확 띄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태연하게 폰을 보며 즐기는 것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 관광을 온 외국인들도 앉아 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신정역에서 5호선 전철을 탔다. 광화문역 교보문고에 가는 중이었다. 빈자리가 없어 임산부 배려 석 앞에 서있었다. 좌석이 비어 있는데 앉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마음을 접었다. 혹시라도 임산부가 탈 수도 있는데 만일 그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난다며 얼마나 낯뜨거운 일인가! 다음 역에서 40대 남자가 두리번거리다 임산부 배려석에 당당하게 앉았다. 검정색 패딩을 입은 젊은 남자는 왼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다가 손을 떼고 핸드폰을 쿡쿡 눌렀다. 별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한 얼굴 표정이었다. 오른손으로 검색을 하며 또 왼손으로 얼굴을 반쪽 가렸다. 얼굴은 번지르르하고 윤기가 흘렀다 그런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지루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어떤 마음일까! 양심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계속 지켜보았다. 검정색 배낭을 무릎에 올려놓고 반복적으로 폰을 보고 있다. 딸꾹질을 하며 몸이 움직였다. 보기에는 저래도 아픈 사람인지 모를 일이다. 남자는 양평역에서 내렸다. 남자 옆에 앉아 있던 60대 아주머니가 손짓을 하며 나를 보고 앉으라고 하여 괜찮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무시하고 앉아 가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 다음 역에서 아주머니가 들어서더니 잽싸게 앉았다. 흰머리에 얼굴은 젊어 보였다. 마스크를 꺼내 쓰고 눈을 감았다. 검정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앉아 있는데 액세서리가 반짝반짝 빛이 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지만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가는 것이 미안해서라는 짐작이 갔다.
나도 언젠가 한번 다리가 부어서 앉아 본 생각이 났다. 앞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창피하였다. ‘저 나이에 임산부는 아닐 텐데 참 한심하네.’하는 눈초리에 전율이 몸에 일어났다. 안되겠다 싶어 일어나 좌석 앞에 서 있었다. 조금 힘들 긴 해도 마음은 편했다. 시집을 가서 임신을 하고 가족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 배려해주던 생각이 났다. 시어른은 이웃에 있는 유명한 한약방에 가서 한방약을 지어 주었다. 따듯한 방에 가서 쉬라며 힘든 일도 시키지 않았다. 애기가 태어날 때까지 핑크빛 사랑을 받았다. 온돌방은 시부모님의 정성으로 데워진 방이라 임신한 며느리에 대한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장손집에서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모두 따듯한 눈으로 지켜주었다. 다음 역에서는 그 자리에 마른 체형의 아저씨가 앉았다. 연신 검은 장갑을 낀 손가락이 움직였다. 반짝이는 이마를 긁적이며 마스크한 얼굴은 눈만 보였다. 눈은 축 처져 눈꺼풀에 가려서 희미하게 보였으며,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은 멍한 사람 같았다. 진짜 임산부가 앞에 있다면 일어나 주겠지!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줌마들도 앉기는 앉아도 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젊으나 늙으나 편하지는 않은 모습이지만 잠깐 앉았다 내렸다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 자리에 60대의 부부가 당당하게 앉았다. 둘은 사이 좋게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만일에 임산부가 자리에 앉아 간다면 모든 사람들이 축하의 눈빛을 보냈을 것이다. 광화문역까지 그 자리에 앉아갈 임산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도 타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필요한 사람이 앉아 가면 보는 사람들도 아기들을 위해서 축하를 보내 줄 것이다. 자리는 만들어 주었지만 주인공이 아닌 사람들이 계속 타고 갔다. 다리를 꼬는 사람, 잠을 자는 남자들, 아줌마들의 수다,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폰을 보는 젊은이들도 가끔 앉아 가는 것을 보면, 직장생활에 지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반복될 것이다. ‘내일의 주인공을 기다립니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내일의 주인공들은 어느 역에서 만날 수가 있을까! 예쁜 미래의 배려석에 앉아 갈 임산부를 그려보며 목적지에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