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뉴스홈

남명따라 사는 길 – 김명규 새싹 대표

합천에서 다시 걷는 실천의 정신

합천 삼가 양천강변에 조성된 ‘남명 따라 사는 길’을 직접 걸으며, 나는 이 길이 단순한 산책로나 관광 코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느꼈다. 이 길은 남명 조식 선생의 사유를 기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조용히 묻는 길이었다.
길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마을을 따라 이어진 황토길과 강변, 그리고 주민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겹쳐진 풍경 속에서 남명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예전부터 다니던 길인데, 이름이 붙고 의미가 생기니 다시 보이더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길 하나가 옛 공동체의 기억을 다시 깨우는 장면이었다.
남명 정신의 핵심은 ‘지행합일’, 곧 앎과 실천의 일치다. 남명 따라 사는 길은 이를 말이 아닌 경험으로 전한다. 길을 걸으며 남명의 글귀를 마주하고, 마을 이야기를 듣고, 함께 걷는 사람과 생각을 나누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실천이다. 이는 전시된 역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역사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 길이 행정 중심이 아니라 삼가면 주민 자치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스스로의 참여로 안내판이 세워지고, 마을의 생활사가 자연스럽게 엮였다. 관광객을 위한 길이면서 동시에 주민의 길이기도 한 이 구조는, 합천이 지향해야 할 발전 방향을 보여준다. 외부에서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내부에서 살아 숨 쉬는 공간 말이다.
합천의 역사는 해인사와 같은 세계적 문화유산에만 있지 않다. 남명 경의 정신을 품은 마을 삼가, 그 마을을 잇는 길 위에 있다. 남명 따라 사는 길은 과거를 보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현재의 삶과 연결되며 미래로 나아갈 가능성을 품고 있다.
지역 발전은 숫자나 규모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 고유의 정신과 역사, 그리고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려는 작은 노력이 모일 때 지속 가능한 변화가 시작된다. 남명 따라 사는 길은 그 시작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이 길을 더 많은 이들이 걷기를 바란다. 걷는다는 것은 곧 생각하는 일이고, 생각은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다. 남명 정신이 길이 되어 이어지는 합천의 오늘이, 내일의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