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도, 교실도 없는 학교에서 “빛나는 졸업장을” – 佑岩 강기수 수필가
내가 사는 동네에서 삼가 읍에 있는 학교까지는 10리 길이다. 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형님이 나를 데리고 가주었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키가 후리후리하게 큰 조광석 선생님이셨다.
우리가 입학할 당시 학교에는 교실이 10개뿐이었는데, 우리 한 학년에 200명 내외 인원이 3개 반으로 나뉘어 있었으니 기본적으로 교실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 1학년은 교실이 없는 학생이 되었고, 하루하루 운동장에서 줄 서고 뛰놀며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공부를 대신했다.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자 6·25 전쟁이 터졌다. 전쟁으로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중 1950년 8월 26일, 비행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쾅, 쿵’ 하는 폭격음이 앞산 뒤에서 울려 퍼졌다. 제트기가 번쩍하고 산 위에 나타났다 사라지면, 잠시 뒤 먼 곳에서 울려오는 폭격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그런 비행기가 여러 차례 날아들자 온 동네가 불안에 떨었다.
며칠 뒤 소문에 의하면, 우리가 다니던 학교와 면사무소, 지서가 모조리 부서졌고, 학교 옆 교량도 파괴되어 건너다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던 중 1950년 10월 8일, 학생들은 우리 동네 동사무소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교생이 모이자 “내일부터 이곳에서 공부한다.”는 말씀이 있었다. 학교가 가까워 좋아했지만, 이튿날 가보니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데 뒤섞였고, 선생님도 한 분뿐이라 수업은 제대로 되지 못했다. 인원 점검만 하다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1950년 11월 1일, 학교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양천강 다리가 폭파되어 먼 곳의 얕은 물길로 돌아가야 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실은 모두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그 잿더미를 치우며 기와 조각과 판자를 분류해 나르는 일을 며칠 동안 했다.
어느 날은 향교로 가서 담장 밑 잔디밭에 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고, 다른 날에는 양천강 강바닥의 자갈밭에 앉아 자갈을 세거나, 둑에 걸터앉아 강물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공부할 교재도 자료도 없으니 구구단을 외우라는 말씀이 전부였다. 그러나 기초도 자료도 없으니 외우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구구단을 못 외운 탓에 대가지 회초리로 맞은 기억만 또렷하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종아리에 맞으면 선이 줄줄이 그어지고,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 집에 와도 아프다고 하소연할 수 없었다. 부모님께 보이면 “얼마나 공부를 안 했으면 맞았겠느냐.”라고 하실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는 마을회관에서, 또 하루는 향교에서, 또 다른 날은 학교에 가서 잔해를 치우며 사역을 했다. 이따금 마을회관에서 공부를 하기도 하면서 세월이 흘러 6학년이 되었다. 그사이 학부모들이 부역으로 지은 초가삼간 교실이 완공되었다. 6학년은 그 교실에 들어가 공부했는데, 나는 처음으로 칠판이 걸린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책걸상은 여전히 없었다. 여름에는 자갈 바닥 위에 앉았고, 겨울에는 가마니를 깔고 앉았다. 청소할 때는 가마니를 들고 나와 몽둥이로 두드려 먼지를 털어낸 뒤 다시 깔았다. 가을이면 교실의 초가지붕을 이기 위해 학생 각자가 짚 10단씩을 새끼줄로 멜빵을 만들어 지고 가야 했고, 겨울에는 드럼통 난로에 넣을 장작을 매일 지고 다녀야 했다.
졸업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때의 교실은 기둥에 버팀목이 대어져 있었고, 벽은 흙바르기를 채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는 그 교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교실도 책걸상도 없는 맨땅에서 6년을 공부했다.
1955년 3월, 삼가국민학교를 졸업했다. 후배들이 “빛나는 졸업장을”이라고 노래 불러주며 축하해 주던 그날, 비록 교실도 책걸상도 없는 배움의 세월이지만, 나에겐 그 졸업장이 더없이 값지고 빛나는 졸업장이 되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든 우리 세대는 국토방위의 의무를 하던 중 월남전에 파병되어야 했고, 6·25에 참전하여 도와준 UN 16개국의 희생자들에 대한 보은(報恩)을 할 수 있었던 나이의 군인이 되기도 했다. 또 “잘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5차 계획연도까지 일을 하여, “언니 뒤를 따른다는” 후배들의 교실과 책걸상을 만드는 데 일역을 한 “빛나는 졸업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