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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해찬 씨 서거와 국가장 추진에 대해 – 여류 이병철 시인

이해찬 씨의 서거 소식을 접하며, 나는 우선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무겁고, 마지막 길을 보내는 일은 남은 자의 예(禮)이며 슬픔이다. 유가족께도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나는 이 애도와는 별개로, 지금 추진되는 국가장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국가장이 갖는 의미 때문이다.
나는 이해찬 씨와 함께한 인연이 있다.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으로 함께 투옥되었고, 그 후 민통련 활동도 함께했다. 그러나 그 과정과 그 이후의 정치적 행보를 지켜보며, 나는 그를 끝내 민주화운동의 동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1987년 6월항쟁 이후 단일화 과정에서 그는 배신의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공개 석상과 언론을 통해 그를 강하게 비판한 바가 있다.
그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의 처신과 행보, 특히 정파적 이익에만 매몰되어 상식과 부끄럼조차 잊은 언행은 도저히 정상적인 정치인의 태도로 인정하기 어려웠다.
정치인 이해찬 씨에 대한 이런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의 죽음을 추도하며 명복을 빈다.
그러나 나는 한갓 정파적 집단의 보스에 불과했던 인물을 국민의 정치 지도자로 둔갑시켜 국가장으로 치르는 일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내 입장을 밝히는 것은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로서의 역사적 책무라 여기기 때문이다.
국가장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국민의 이름으로 추도하는 의례라면, 그 순간 국가는 한 사람을 ‘국민적 정치 지도자’로 인정해 추앙하는 행위를 공식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찬 씨를 국민적 정치 지도자로 인정할 수 없는 나와 같은 많은 국민에게, 그 추도와 예우를 국가가 국가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일이 된다.
국가장이 국민의 이름으로 애도하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 없는 국민에게는 그것이 곧 강요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애도가 아니라 국가 권력에 의한 역사 규정의 강요이며, 민주주의의 정신을 거슬러 가는 부당하고 불의한 처사다.
더구나 그것은 이 땅, 이 나라와 민중을 위해 몸 바치며 먼저 가신 선열들에 대한 모욕이며, 국민에 대한 기만이며, 민주화운동에 대한 또 하나의 배신이라 나는 믿는다.
민주화운동의 이름은 결코 특정 정파의 권력과 보스 정치에 면죄부로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죽음 앞에서 예를 다하는 것과, 국가가 특정 인물을 국민의 지도자로 추켜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해찬 씨의 죽음은 애도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장 결정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 앞에 그 기준과 정당성을 분명히 설명해야 하며, 최소한 국민의 역사 감각을 모욕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런 내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더 이상 이 나라가 정파적 입장에 매몰되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세계의 생존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는 이때, 우리 정치는 아직도 정파적 진영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난을 무릅쓰고 몇 자 적어 나누는 것은 고인을 지지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국민의 이름을 빌린 국가의 강요는 더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내 믿음 때문이다.
(26. 0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