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문화원회원 유적지 탐방을 마치고
이병생
합천문화원향토사연구소장
합천문화원(원장 전정석)에서는 금년 11월9일 무학대사의 학술대회를 개최키 위하여 사전에 무학대사의 발자취를 남긴 충남서천 간월도와 양주시의 회암사지를 돌아보기 위하여 10월13일에서 14일까지 1박2일의 일정으로 13일 아침 8시에 합천 이화예식장 앞에서 문화원이사와 향토사연구위원 30명이 출발하여 올라가는 길에 우리 합천과 관계가 있는 최치원 선생의 유적지로 알려진 홍성을 들리기로 계획하여 11시경 충남 홍성 쌍계에 도착하였다.
원래 인터넷상에 알려지기는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가 짙은 장곡면 월계리 금환유적지 복원사업과 연계해 <고운최치원 기념관 및 인성교육체험교실>건립을 검토 중이고 최치원의 묘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환유적지를 중심으로 관련 금석문과 유물이 집중되었다는 것과 지금도 왕릉에 버금가는 규모의 봉분이 있다라고 해서 현지를 확인키 위하여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현지를 확인해 본 우리들은 크게 실망을 했다.
사실 쌍계라고 하는 골짜기는 별로 유적지 같은 기분이 들지 않고 그곳 석각에 새긴 글씨는 최치원 선생의 글씨가 아니고 인백기천(人百己千:다른 사람이 백이라는 숫자의 노력을 할 때 최치원 선생은 천이라는 숫자만큼 노력한다는 뜻), 용은별서(龍隱別野:용은 별도의 농약에 숨어있다.), 월협(月峽:고요히 흐르는 개울물에 달빛이 비치는 골짜기), 취석([醉石:돌의 모양이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 등 몇가지 석각에 새긴 글씨는 후손들이 새겨 놓은 것이다. 다만 골짜기 바위에 쌍계(雙磎)라는 글씨가 하동쌍계사의 글씨와 같다고 하여 최치원 선생의 친필이라고 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문중에 후손 두 사람이 나와 설명하는 것도 안내판에는 묘소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필자는 최치원 선생이 어느 때 와서 언제 갔는지 며칠을 머물렀는지 질문하였으나,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다고 했다. 지금에 와서는 기념관을 짓는다는 것도 계획이 취소되었고, 아직까지 문화재 지정도 확실한 근거가 없어 받지 못했다고 했다.
다음 코스로 서산시 간월도 간월암을 둘러보고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간월암은 무학대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스님은 이곳 간월암에 토굴을 지어 열심히 수도하던 차 달을 보고 도를 깨치시니 나옹스님이 더 배울 것이 없다하여 법호를 무학(無學)으로 지어 주시다고 하였으며 간월암 안내판에는 무학대사가 어느 시기에 언제 어디서 출생하고 한 내용도 분명치 않았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일박한 후 14일에는 9시에 양주시 회암사로 향하여, 넓디넓은 4차선 고속도로를 달려 10시엔 회암사지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합천문화원 향토사학회에서 2009년 11월에 갔을 때는 박물관이 없었는데 아주 큰 건물로서 새로이 단장하여 각종 유적과 유물을 전시해 두고 있었다.
양주회암사지 박물관은 사적 제128호 회암사지 출토유물을 수집·보관·연구·전시·교육하기 위해 건립한 전문박물관이다.
고려말에서 조선전기까지 최대 왕실사찰이었던 회암사의 역사와 위상을 재조명하고 당시 왕실 및 불교문화를 이해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역사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상설전시실에는 잡상, 토수, 용두, 청기와, 청동금탁, 금동불입상, 백자동자상, 용문기와, 회암, 명청동발 등 수많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다시 위에 위치한 회암사지로 발길을 옮겼다. 회암사지는 국가사적 제128호로 1964년 6월10일 지정 되었으며, 양주시 회암사길(회암동18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왕실의 후원을 받아 많은 불사가 이루어진 조선전기 최대의 왕실사찰로서 크게 번영하던 곳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1997년부터 2015년까지 1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하여 그 규모와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회암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동국여지승람에 고려 명종4년(1174년)에 금나라 사신이 회암사를 들렀다는 기록이 있어서 12세기 후반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때(1382년)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선사의 뜻에 따라 그의 제자인 나옹선사가 크게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머무르며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크게 성장하였으며, 태조가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 궁실을 짓고 <왕의 별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효령대군, 정희왕후, 문정왕후 등 왕실인물들의 후원을 받아 최대의 왕실 사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 결과 10,000여 평의 넓은 면적과 주춧돌의 수가 532개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회암사지는 일반적인 사찰 건물과는 달리 궁궐건축의 건물구조나 방실이 나타난다.
또한 왕실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고, 기와류나 왕실전용 자기를 생산하던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도자기 등 당시 왕실과 불교문화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 되었다.
다시 도보로 500m쯤 위 천보산에 있는 회암사를 찾아 올라갔다.
1922년 봉선사 주지 홍월초가 새로 보전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였으며, 지공, 나옹, 무학의 진영을 모셨다.
1976년에는 호선이 큰 법당과 삼성각, 영성각 등을 증건 하였다. 중요 문화재로는 회엄사의 옆 산 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보물 제387호인 회암사지 선각왕사비와 보물 제388호인 회암사지부도, 보물 제 389호인 회암사지 쌍사자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49호인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제 150호인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제151호인 무학대사비, 제52호인 회암사 부도 탑이 있다.
돌아오면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첫 발령지로서 교사생활을 했다는 문경 청운각을 들려 박정희 대통령의 교사시절에 관한 영상을 10분 정도 보고 청운각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박대통령은 1937년 4월1일 문경공립보통학교의 훈도 선생님으로 부임하여 3년간 교사 생활을 하였으며 옛 하숙집이던 곳을 청운각(경북 제1호 보존초가)이란 이름을 붙여 어린제자들과 더불어 청운의 꿈을 가꾸어 가시던 곳으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아직도 그곳에는 거처하시던 방, 마시던 우물과 디딜방아, 장독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차내에서 보고 느낀 사항들을 한마디씩 회원님들이 마이크를 잡고 설명하는 것은 우리 합천문화와 문화원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생각되며 1박2일의 최치원 선생과 무학대사의 유적지 탐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유익하였으리라 믿는다.
나옹선사의 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