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강은 흐른다(64) 창가에서 – 정병석
세상을
강은 가르고
난 이쪽에 앉아
저쪽을 그리지
산자락에 기댄 무심한 강은
태고의 시간을 이어가고
사랑은 시나브로 다가와
홀연 사라지는가
봄 여름내 꽃피우던 새소리
자취 없고
가을은 하늘처럼 붉어
머리 빗고 섰다
밤이 되면
사랑은 슬픔으로 젖어 들고
추억의 조각들이 부나비처럼
몰려오는 이 밤에도
그리운 이들은
이름 모를 마을에서 잠드는가.
손국복 시인의 시평|
시인 정병석은 합천문학회 창립 멤버이다. 합천읍 관내 합천여고에서 평생을 국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시를 쓰고 가르친 교육자이다.
1995년 합천문학 3호에 실린 이 시는 젊은 시절 그의 담백한 성품처럼 맑고 단아하다. 시인은 세상의 창가에 앉아 아득한 저승을 바라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가 흐르는 창가에는 추억처럼 번져오는 사랑과 그리움에 몸서리치면서 밤 그늘 속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그리운 이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마침내 그리워하던 나 역시 세상을 떠날 때 그리움도 떠나가는가. 내가 떠나고 난 그 자리에도 산천은 의구하고 계절은 순항하리라. 시 속의 화자는 깊이 사색하고 명상하며 인생을 관조하는 내면의 속삭임을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합천 쌍백 출신의 정병석 작가는 일찍이 <예술 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하였지만 교직에 충실하여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하여 많은 작품을 선보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퇴직하고 난 지금 제2 인생의 새로운 문학 활동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