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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에세이(3) 남이 알아주는 나 – 안병국 교수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통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답지 않겠느냐?”

이 구절은 본 <학이(學而)> 편의 마지막 구절(16)의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라는 말과 수미상관(首尾相關)을 이룬다.

<이인(利仁)> 14장의 “자기를 알아주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고, 남이 알아줄 수 있는 것을 구해야 한다(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와 <위령공(衛靈公)> 18의 “군자는 자기에게 능력이 없음을 병통(病痛)으로 여기고,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병통으로 여기지 않는다(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는 구절로 이어진다. 또 같은 장(衛靈公) 20의 “군자는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알고, 소인은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린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는 말 등으로 확대된다.

최치원의 오언절구(五言絶句) <추야우중(秋夜雨中)>에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린다. 이 세상 뉘라서 내 마음을 알아주리, 삼경 깊은 밤 창밖에 비는 내리고, 등불 앞에 초조한 심사는 만리를 달리네(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비가 오는 가을밤에 자신을 ‘알아 줄 사람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특히 가을밤, 내리는 비, 등불 등의 시어(詩語)는 알아주는 이 없는 지식인의 자의식이 응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능력이 있는 그가 그것을 발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으로 보기도 한다. 결국 그것은 알아주는 이 없는 것에 대한 좌절이나 소외로 봄이 타당하다. 결구(結句)의 ‘만리심(萬里心)’이란 세 글자가 그것을 잘 함의하고 있다. 만리 건너 고국에라도 가면 자기를 알아줄 지기(知己)나 지음(知音)이 혹시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는 친한 친구였는데, 백아가 거문고를 연주하면 종자기는 그 연주를 듣고 백아가 거문고를 통해 담으려는 뜻을 알았다. 그러다 종자기가 먼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한다. 여기서 생긴 사자성어가 ‘백아절현(伯牙絶絃)’이다. <지음(知音)>—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라는 뜻의 단어도 이 고사에서 유래한다.

자기가 자기를 선전하고 추천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겸손이 미덕이었지만, 요즘은 본인의 장점을 부각시켜 관심을 끌거나 상대방을 납득시키고자 한다. 그것이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모수(毛遂)가 얼마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없어 답답했으면 스스로를 추천했을까.

춘추전국 시대 때, 조(趙)나라에서 초(楚)나라에 구원을 청할 사자(使者)를 물색할 때 모수가 스스로 자기를 천거했다. 겸손 혹은 겸양이 미덕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모수의 사람됨이 경솔하여 다소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여 찾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를 알리는 모수자천이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쨌거나 모수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낸 사람’이다.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삼국지연의』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다. 그런데 유비, 관우, 장비가 제갈량의 융중(隆中) 초려(草廬)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제갈량이 먼저 유비를 찾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역사학계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지는 가설이다. 이 기록은 주로 위나라의 역사를 다룬 『위략(魏略)』과 사마표(司馬彪)의 『구주춘추(九州春秋)』에 등장한다.

공자도 소극적이지만 자기를 알리려 했다. <자한(子罕)> 12장에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으면, 궤에다 넣어 감추어 두어야 합니까? 좋은 가격을 찾아 팔아야 합니까?(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라고 에둘러 묻자 공자는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좋은 상인을 기다리는 사람이다(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하고 단호하게 답하였다. 이 대답 속에는 “팔긴 팔아야 하겠으나 다만 값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팔리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밀한 이유를 암시하고 있다.

‘피알(PR)’이란 말을 쓴다. ‘Public Relations’의 약자다. 처음 이 말이 나왔을 때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던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뭔가 자기 자랑을 해야 하는 상황이 어색하고 겸손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의 장점을 알리는 것이 사회의 흐름이다.

『주역(周易)』에 <겸괘(謙卦)>가 있다. 『주역』 64괘 중 15번째다. 이 괘는 낮은 땅 아래에 높은 산이 있는 형상으로, 자신을 굽혀서 낮은 자보다 더욱 낮추는 ‘겸손(謙遜)’의 상(象)이다. 땅속에 산이 들어간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남보다 뛰어난 재주 등을 모두 다 감춘다 하여 해석가들은 이 겸손함에는 우주 원리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일그러뜨려 겸손한 자를 보태주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며, 땅의 도리는 충만함을 변경하여 겸손함에 흐르게 하고, 사람은 가득 찬 자를 싫어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人道惡盈而好謙.)”

‘가득 찼다’는 것은 <교만>의 의미와도 통한다. 골짜기가 높은 언덕이 되듯이 자신을 낮추는 자가 오히려 높임을 받는다 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단전(彖傳)>에서 “천도(天道)는 아래로 구제하여 광명하고, 지도(地道)는 낮아서 위로 행한다(天道下濟而光明, 地道卑而上行.)”라고 설명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주공의 말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역(易)에 하나의 도(道)가 있으니 그것으로 크게는 천하를 지킬 수 있고, 중간 정도로는 그 국가를 지킬 수 있으며 작게는 그 몸을 지킬 수 있다. 그것이 곧 <겸손함>이다(易有一道, 大足以守天下, 中足以守其國家, 小足以守其身, 謙之謂也)”라고 하였다.

겸손은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바로 ‘예(禮)’의 근본 정신이기도 하다. 예에 충실한 사람은 자만(自慢)하지 않기 때문에 화(禍)를 당하지 않는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라고 할 수 있다. ‘알아주다’는 “남의 사정을 이해하다”, “다른 사람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하다”, “어떤 사람의 특이한 성격을 받아들이다”를 뜻하는 동사다. 주로 ‘알아주는’으로 쓰며, ‘알아주어/알아줘’, ‘알아주니’로 활용한다. 자기 장점을 감추고 살아야 할지 드러내며 살아야 할지, 가치가 혼돈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