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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에세이(4) 화씨 ‘울음’으로 옥(玉)임을 알리다 – 안병국 교수

『한비자(韓非子)』에 <화씨지벽(和氏之璧)> 고사가 있다.
초나라 화씨(和氏)가 형산(荊山)에서 옥돌덩이[玉璞]를 발견하여 그것을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옥 감정사가 ‘돌’로 판정하는 바람에 왼쪽 발과 오른발을 잘리는 월형(刖刑)을 당한다. 무왕(武王)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곧 그 옥돌덩이를 안고 초산 아래에 가서 사흘 밤낮을 울었다. 눈물이 다 마르고 눈에서 피가 흘러나오도록 울었다. 문왕이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물어 그 까닭을 알게 된다(武王薨, 文王即位, 和乃抱其璞而哭於楚山之下, 三日三夜, 泣盡而繼之以血. 王聞之, 使人問其故.). 드디어 그 옥돌덩이는 다듬어져서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 된다. 이것이 ‘화씨지벽’이다.
화씨(和氏)는 울음을 통해 자기를 알렸다. ‘울음’은 감정에 반응해 눈물을 흘리는 상태를 뜻한다. 또 우는 소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보통 슬픔을 느낄 때 울지만 사실 다른 격한 감정을 느꼈을 때도 운다. 비단 슬플 때만이 아니라 기쁠 때, 화날 때, 즐거울 때, 사랑할 때, 미워할 때 등의 경우에도 울음이 나오기도 한다. 사람에게 울음은 감정과 필요를 나타내는 신호이자 메시지이다.
화씨는 너무도 억울해서 울었다. 그 억울함의 이유는 “(월형을 받아서 슬픈 것이 아니라) 저 보배로운 옥을 돌이라 하고, (저 같이) ‘곧은 선비’를 속이기나 하는 사기꾼이라 이름난 것[(吾非悲刖也,) 悲夫寶玉而題之以石, 貞士而名之以誑.]”이 슬펐다는 것이다.
화씨가 ‘사흘 밤낮(三日三夜)’을 울자 눈물이 다 마르고 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울지 않았더라면 문왕은 알지 못했을 것이고, 화씨는 광인(誑人), 허풍쟁이 내지는 기군망상(欺君罔上)이나 하는 사기꾼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옥돌덩이는 전국옥새(傳國玉璽)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왜 화씨는 그 ‘옥돌덩이[玉璞]’에 집착했을까. 한비(韓非, 한비자)가 ‘화씨지벽’ 이야기를 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개연성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옥돌덩이 이야기를 하기 위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뭔가 한비 자신이 당시의 군주나 권신(權臣), 세상에게 하고 싶은 내용을 이 이야기 속에 감추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마천은 한비가 “청렴하고 강직한 사람들이 사악한 권신들에 의해서 배척당하는 것을 슬퍼했다(悲廉直不容於邪枉之臣)”고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서 말한 바 있다.
그게 대체 무엇일까. 그 메시지가 무엇일까. 한비가 굳이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자신의 저서인 『한비자』 ‘화씨’ 편에 실은 것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한비 자신의 ‘정치적 자서전’이자 세상에 던지는 절규일 수 있다. ‘옥’이라는 돌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진실과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아니 그것보다 한비 자신을 몰라주는 그 야속한 시대에 대한 불평이라고 본다면 논리의 비약이 될까.
아무튼 그는 전국시대 말기, 나라를 살릴 유일한 방법은 엄격한 ‘법(法)’과 ‘술(術)’이라고 믿었다. 법가(法家)에게 ‘법(法)’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범·상벌 체계를 뜻하고, ‘술(術)’은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고 속임수를 막기 위해 은밀히 사용하는 통치 기술을 의미한다. 당시 왕들은 유가(儒家)나 묵가(墨家)의 도덕론에 휘둘리거나, 간신들의 말만 듣고 한비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화씨는 다리가 잘리면서도 끝까지 그 돌이 ‘옥’임을 주장하며 울었다. 화씨의 통곡과 피눈물은 “내 사상이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가는 고통쯤은 견딜 수 있다”는 개혁가 한비의 처절한 신념을 상징한다. 비록 세상이 몰라줘도 진실(옥)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 즉 자신의 법가사상(法家思想)이 ‘진리’라는 자부심을 화씨의 고집에 투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비의 법과 술은 진나라가 전국의 분열을 통일로 이끄는 과정에서 군주 권력을 강화하고 국가 질서를 단속하는 핵심 도구로 작동했다. 진나라가 여러 제후국을 병합·통합할 때, 법을 통해 군사·행정·세금·법률을 통일하고, 술을 통해 신하의 충성도와 권력 균형을 관리했다. 이와 같은 법가적 통제 강화가 진나라의 통일을 가능하게 했다.
화씨의 옥을 ‘돌’이라고 판정한 이들은 왕 곁에 있던 ‘옥 감정사’들이었다. 한비가 보기에 이 감정사들은 왕의 눈을 가리는 기득권 세력과 간신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을까 봐 진귀한 보물을 봐도 “그저 평범한 돌일 뿐”이라고 깎아내린다. 결국 문왕에 이르러서야 옥임이 증명된다. 한비는 “내가 죽고 나서야 내 말이 옳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서글픈 예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천하의 보배(법치)인데, 당신들은 눈이 멀어 나를 사기꾼으로 몰고 내 팔다리를 자르는구나”라는 그가 숨겨둔 원망을 읽을 수 있다. 옥을 알아보지 못하고 화씨의 다리를 자른 두 명의 왕과 당대 법치주의를 거부하는 군주들에 대한 원망… 한비에게 ‘화씨’는 자기 자신이었고, ‘옥’은 법치 사상이었으며, 월형으로 ‘잘려 나간 다리’는 개혁을 시도하다 입은 상처와 고난인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진실은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희생을 치러야만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비극적인 역설을 담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보석을 품고 있다. 그것이 재능일 수도 있고, 아직 드러나지 않는 가능성일 수도 있다. 진실은 고통과 손해를 감수하고 기다린 후에야 오는 것인가. <화씨의 벽> 이야기는 단순히 보석 전설을 넘어 인간의 용기, 그리고 진실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본능에 ‘인정욕구(認定欲求, Desire for recognition)’가 있다. 자신이나 자신이 소유한 물건에 대해 타인의 칭찬이나 인정을 통해 그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모든 인간은 내가 소유한 물건은 가짜가 아니며, 흔한 물건이 아니어서 그 가치에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열망을 가진다. 인간 자체를 인정의 대상으로 둘 때 그것은 인간 존엄과 생존과 직결된다.
‘인정욕구’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다. 나 외의 사람으로부터 받는 긍정적 평가로 자존감과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심리다. 남으로부터 자기의 어떤 종류의 능력이나 소유한 물건에 특이성(特異性)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일은 지닐만한 가치와 살아갈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일이다. <화씨지벽(和氏之璧)>은 숨겨져 있는 진실을 알아보는 안목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당시 저평가된 한비의 숨은 재주와 경륜을 알아보라는 울분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 자신감이나 자부심을 갖게 함으로써 살맛을 느끼게 하고 삶의 목표까지 생기게 만드는 또 다른 기제(機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