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먼 북소리(4) 고운(孤雲)의 시 ‘진달래’와 젊은 날의 습작 시(詩)
최효찬
작가, 수필가. 문학박사
올해는 봄 가뭄이 조금 있었다. 고향 집 앞의 샘물이 거의 말라가고 있었다. 페트병 1병을 받는데 시간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게 있다. 비와 벚꽃의 함수관계다. 벚꽃이 필 조짐이 보이자 비가 조금 내렸다. 지난 주말 벚꽃이 만개하자 이번에는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거 참 묘한 기라. 비가 안 내리다가도 꼭 벚꽃이 만개해 절정이 되면 비가 와서 꽃이 다 떨어졌뿌리는 기라.” 목욕탕에 갔더니 이런 탄성이 들렸다. 듣고 보니 정말 거의 매년 그랬던 것 같다. 올해도 가뭄이 지속되다가 벚꽃이 만개하자 비가 내렸다. 눈처럼 꽃비로 흩날리던 꽃들은 이내 빗물에 더렵혀졌다. 그 모습은 볼수록 처연하다.
조설근의 소설 〈홍루몽〉에는 꽃무덤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가보옥과 임대옥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눈다. 어느 날 복숭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바람이 불어와 꽃잎들이 보던 책 위에 떨어진다. 가보옥이 연못에 떨어진 꽃을 버리자고 하자, 임대옥은 꽃을 더럽히는 꼴이 되니 꽃무덤을 만들자고 말한다. “꽃잎을 쓸어 담아 여기 비단 꽃 주머니에 넣어 흙 속에 묻으면 오래 지나도 결국 흙으로 돌아갈 뿐이니 훨씬 깨끗하지 않겠어요?” 이때 “물 흐르고 꽃잎 지면 봄날도 지나가네”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하루아침 봄은 지고 홍안청춘 늙어가면/ 꽃잎 지고 사람 가니 둘 다 서로 알 길 없네.” 임대옥이 안타까운 연정을 이렇게 노래한다.
홍루몽의 구절처럼 꽃이 만개한 봄날에 꽃비가 눈처럼 흩날리면 봄은 절정을 향한다. 이때 때마침 비가 내리면 화사하게 만발했던 꽃잎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 지고 만다. 빗물에 그 꽃잎들이 쓸려 내려가면 이내 봄날이 저만치 가 버린 듯 느껴진다. 그 순간 젊은 시절 청춘 또한 엊그제 같았는데, 그만 세월에 쓸려 훅 가버린 것 같다.
필자가 대학에 들어간 그해 4월 중순, 중간고사를 보다 고개를 들어 잠시 바깥을 보았더니,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개한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 이 화사한 시기에 시험을 쳐야 할 게 뭐람!”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게 벌써 44년 전의 일이다. 교정에는 진달래동산이 유독 많았다. 꽃들이 만발한 캠퍼스 한 편에선 ‘짭새’들이 호시탐탐 학생들의 동태를 엿보는 살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때 고향 산야에 봄이면 지천으로 피었던 진달래가 생각나 시를 끄적거렸다. “인적 끊긴 깊은 산속/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동산/제각기 화사한 자태/뽐내고 있건만/떠가는 구름과 산새들 뿐이네.” 대략 이런 시를 적었던 것 같다. 젊은 날의 습작 시들은 어느 날 일기장을 태우면서 사라졌다.
그러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미 천 년 전에 ‘두견’이라는 시를 쓴 것을 알았다. 두견은 진달래를 의미한다. “가여워라 고운 빛깔로 바닷가에 서 있건만/어느 누가 좋은 집 난간 아래 옮겨심을까/뭇 초목과 다른 품격 지녔건만/지나가는 나무꾼이나 한번 봐줄는지.” 여기서 고운 빛깔의 진달래나, 뭇 초목과 다른 품격은 뜻을 펼치지 못하는 시인을 표상한다. 인적 끊긴 바닷가는 소외감을 암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 시를 읽어보다 적이 놀랐다. 대학시절 습작 시에도 이런 소외의식이 약간 묻어 있다. 단칸방조차 구할 수 없어 친구형님 집을 거쳐 먼 친척 집에서 ‘입주 과외’를 하던 시절. 서울살이의 차가운 현실 앞에서 젊은 패기가 구겨질까 봐 보호막으로 ‘아웃사이더'(outsider)를 자처했었다.
지나고 보니 늘 아웃사이더였던 것 같다. 고향인 합천은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보면 국토의 외진 곳에 있다. 합천은 1728년 무신정변 이후 벼슬 금지령에 수백 년 동안 차별을 당했다. 봉산, 그 중에서 술곡은 합천에서도 주변에 속한다. 소외의식이나 피해의식은 지리적 영향도 작용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아웃사이더가 오늘의 나를 키워준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성장시킨 힘이 아웃사이더 의식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웃사이더는 자못 당당하다. 완장을 차고 미시 권력을 행사한 일도 없다. 굽신거리며 아부한 일도 없다. 지위나 욕망을 위해 자신을 팔지도 않았다. 신흠은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라고 예찬했다. 나 또한 세상의 한파에 고개를 숙인 부끄러운 기억은 없다.
고운 선생은 가야산에 들어가 “온 산을 물로 에워싸고 세상의 시비를 차단하며” 풍류(風流)의 정신세계를 구현했다. 어쩌면 고운 선생의 소외의식이 현묘한 도(道)라는 풍류의 정신세계로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진달래 시를 쓰며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야속한 마음을 의탁했지만 그것은 정신을 올곧게 지키기 위한 내면의 다짐이었고, 이 노래로 욕망에 혼탁한 세상을 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의 핸드폰 배경 화면은 학사대 고운 선생의 붓을 꽉 잡고 있는 사진이다. 고운 선생의 붓을 꽉 잡은 것은 아무리 추워도 문향(文香)을 팔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 봄날을 어지럽히는 ‘가짜 꽃비’가 마구 흩뿌려지는 요즘, 고운의 둔세시(遁世詩)를 읽으며 임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 또한 언젠가 풍류의 먼 발치에라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는지. 어디선가 먼 북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안의 속물적 자아를 정화하라는 울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