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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오늘도 황강의 품속을 거닐다 – 이호석 수필가

나는 매일 같이 친구 같은 황강의 품속을 걷는다. 황강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를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아름다운 추억과 지역의 역사를 만들고 품어준다.
봄이면 황강을 따라 조성된 도로에는 노란 개나리꽃과 화사한 벚꽃이 겨우내 얼었던 우리의 마음을 포근히 녹여주고, 무더운 여름이면 도로변의 무성한 나무 그늘과 차가운 합천댐 심층수 방류로 주변의 더위를 식혀준다. 가을이면 주변 곳곳의 넓은 들판 오곡이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겨울이면 봄부터 가을까지 쌓여 있는 마음의 여독을 차분히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자주 찾는 곳은 대야성지에 인접한 황강변 그라운드골프장과 우리 마을 앞 공원 등이다. 어릴 적부터 뛰놀던 황강을 항상 어머님 품속같이 생각하며 친숙하게 지낸다.
황강의 근원과 여운을 생각해 본다. 거창 덕유산 골짜기 옹달샘에서 졸졸 흘러나온 실개천이 작은 개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다 거창 대평리에서 ‘황강’이란 큰 이름이 붙여진다. 거창 지역 삼십 리를 더 돌아 합천 봉산 땅으로 흘러던 황강은 합천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백팔십 리 길을 쉬지 않고 흐르다 청덕에서 황강이란 이름을 떼 버리고 잠시 머물다가 낙동강 큰 물결을 따라 목적지 바다를 향해 기약 없이 떠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의 옛 이름은 ‘대야’ ‘강양’ 등으로 여러 차례 바뀌었고 조선조 1413년 합천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상 대대로 황강의 품속에서 살아왔고, 나 또한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고 있다. 황강의 푸른 물은 하얀 백사장과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4계절의 풍치를 마음껏 그리며 반만년 세월을 끊임없이 흘러오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황강 주변의 모든 생물체에 봉사하고 희생한다. 목마른 논밭을 만나면 아낌없이 품고 있는 강물을 나누어 주며 농작물을 수확할 때까지 정성을 다해준다. 지역의 인간들에 일용할 식량을 만들어주고, 주변의 풀과 나무에 생명수가 돼 준다. 그 고마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황강은 그 넓은 가슴으로 유구한 역사도 모두 품고 있다. 고대에 수차례 치른 대야성 전투와 삼국시대인 642년, 백제의 윤충이 1만 대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 신라로 쳐들어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아비규환이 된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잔인함과 욕심에 치를 떨고, 죽죽의 충정 어린 주검에 감탄과 안타까움도 가졌을 것이다.
조선조 왜놈들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이곳 조상들이 앞장서 괭이와 죽창을 들고 의병에 나섰다가 왜놈들의 조총 앞에 힘없이 쓰러지는 안쓰러움도 보았고, 그 후 왜놈들의 침탈로 나라를 빼앗긴 순박한 백성들이 당한 온갖 수모를 보면서 함께 울분을 토하기도 했을 것이다.
1950년 6·25 한국 전쟁으로 곳곳에서 동족의 피비린내가 흘러들어 역겹기도 하였고, 전쟁이 끝나자 바로 보릿고개 시절을 만나 초근목피로 살아가던 조상들의 삶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싶다.
그 변화무쌍한 역사 속에서도 자연과 평화스러움을 갈구하던 전국의 많은 시인 묵객이 이곳 함벽루를 찾아와 황강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노래하며 마음을 추스르기도 하였다.
1970년대까지 만해도 합천읍 소재지를 비롯한 몇 곳을 제외하고는 강변 제방이나 강을 건너는 교량이 거의 없었다. 백팔십 리 곳곳에는 소형 나룻배가 왕래하던 나루터가 있었고, 나루마다 그 지역 조상들의 온갖 애환이 물속 깊이 서려 있었다.
황강 변, 많은 농가에서는 둔치에 농토를 일구어 농사를 지으며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여름 홍수 때가 되면 황강은 봄부터 땀 흘려 지은 농작물을 몽땅 쓸어가기도 하였고, 강변 움막에 키우던 가축은 물론, 심지어는 물에 잠긴 곡식을 보고 애간장이 타 강가에 나왔던 농부를 휩쓸어 가기도 했다. 황강이 평소에는 지역민의 젖줄로 너무 고마웠지만, 때로는 당신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힘없는 농부들에게 큰 아픔을 주는 횡포를 보면서 한없이 밉기도 하였다.
황강의 횡포는 1988년 합천댐이 준공되면서 막을 내렸다. 황강 주변 오랜 세월 물속에 잠겨있던 수많은 옥토가 되살아 났고, 백리 벚꽃길과 영상테마파크, 청와대 등으로 치장하여 골짜기 전체가 천혜의 보물로 만들어졌다. 황강 주변 곳곳에 공원을 비롯하여 궁도장, 그라운드 골프장, 파크골프장 등 운동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릴 적 매년 여름철 난폭한 홍수의 횡포를 보던 나로서는 한 마디로 천지가 개벽한 듯 감격스럽다.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지역에서 큰 어른이 탄생한 덕분임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큰 고마움을 모르고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는 실없는 향민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상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황강은 지역민들의 공동 목욕탕이요, 빨래터였다. 추운 겨울 강변 마을 젊은 아낙네들이 빨랫감을 이고 나와 빨갛게 언 손을 호호 불며 고된 시집살이 한풀이로 강가의 너럭바위에서 빨랫거리를 나무 방망이로 죽어라 두들겨 패는 측은함도 보고, 무더운 여름철 들녘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땀에 젖은 베적삼을 훌렁 벗어 던지고 무례하게 당신의 품속으로 풍덩 뛰어들어도 나무라지 않고 모두 보듬고 위로해 주었다.
그동안 당신의 몸 곳곳에 생채기를 내며 제방을 쌓고, 교량을 놓고, 중간에 거대한 댐을 만들어 허리를 두 동강이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아프고 갑갑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모두가 이기적인 인간들이 편리만을 생각하며 저지른 잘못들이니 당신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용서를 바랄 뿐이다.
황강! 당신은 대대로 이 지역 주민의 생명줄이요. 친근한 벗이었다. 나는 이곳에 태어나 당신의 품속에서 한평생 살아가는 것을 무한한 행복으로 생각한다. 오늘도 황강의 품속을 거닐며 변함없는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