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봉제사(奉祭祀)의 유래-장풍득수(藏風得水) 이야기(99)
진대수
풍수가 겸 수필가
(016-624-3694)
제의례는 조상을 제사지내는 의식절차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존재하게 한 근본에 보답해야 할 것이고(報木之禮) 그것이 효도(孝道)이다.
4대(父母, 祖父母, 曾祖父母, 高祖父母)까지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사람이 죽으면 그 기(氣)의 파장이 약 100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1대를 25년으로 하면 4대조는 100년이 된다. 따라서 돌아가신 분은 100년 동안 바로 자기의 가족이나 후손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4대조 영혼은 후손과 파장이 맞으므로 함께 지낼 수 있고, 후손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큰 영향력이 있다는 신념에서 4대까지 지낸다.
조선 9대 성종 때까지만 해도 제사를 아들, 딸 구별 없이 돌아가며 지냈다. 조상을 받드는 정신은 아들, 딸이 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들이 없으면 딸, 사위, 외손까지 제사를 지낼 수 있어 당시에는 양자를 들일 필요가 없었다. 조선 후기 임란과 병란을 거치고, 17세기 사림세력에 의해 성리학적 중국문화가 사회전반을 지배하면서, 부계(父系)와 장자중심 사회로 변질돼 외가와 처가는 차별했다. 더구나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장자(長子)에게 재산이 상속되고, 또한 남존여비, 재가금지, 서얼차별 등 가부장체제가 됨으로서, 부계 친족중심의 문중으로 제사의 예법이 변했다.
반면에 서민이나 상놈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이같이 신분에 의한 제사가 조선말까지 오다가,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과거제와 신분제폐지, 과부의 재혼허용 등으로 신분차별이 없어졌다. 이때 신분에 억눌러 살던 서민과 상놈도 양반의 행세를 하면서 양반들만 지내던 4대봉제사도 같이 지냈다. 더구나 1909년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서 민적법(民籍法)을 시행했다. 전 백성의 50%도 안 되는 양반들의 권한을 축소하고, 또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서민, 상놈 할 것 없이 모두가 호적을 갖게 했다. 그동안 성(姓)도 없이 천대받아 온 이들이 호적을 가짐으로 일시에 양반행세를 하면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또한 조상을 섬기기도 했다. 이로서 양반과 제사가 많은 나라가 된 샘이다.
조선시대 국법인 경국대전(1485, 성종 16년)에는 6품 이상은 3대, 7품 이하는 2대 제사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가례에는 공경대부사(公卿大夫士)는 높낮이에 관계없이 모두 4대를 제사하고 6품 이상은 3대, 7품 이하는 2대를 제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자손의 신분에 따라 선조 예우가 달라지는 이 같은 논리에 의하면 자손이 벼슬을 하고 품계가 높아야 조상이 오래토록 제사의 공경을 받을 수 있고, 자손이 벼슬이 없거나 품계가 낮으면 제사의 공경을 받다가도 끊어져 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더 우스운 것은 자손이 승급을 하거나 강등이라도 될 때이다. 7품 벼슬을 하다 6품 이상으로 승급하면 지내지 않던 증조부모 제사를 지내야 하고, 반대로 7품 이하로 강등되면 늘 지내던 증조부모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제사는 조상을 공경하는 예의이다. 집안의 예법에 따라 격식을 갖추는 일도 바람직하겠지만, 정성을 다하여 간소하게 지내는 것도 또 하나의 예법으로 자리매김하는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