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올봄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 이호석 수필가
우수 경칩이 지난 지 한참 되었다. 계절은 분명히 만물이 소생하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하는 완연한 봄이건만, 왠지 희망보다는 쓸쓸함이 묻어나는 봄이다. 나만이 그럴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먼저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며 봄을 노래하던 자연이 변하면서 우리 삶의 터전이 더욱 삭막해지는 것 같다. 동화 속 같은 아름다운 추억 거리가 없어진 게 하나둘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삼월 삼짓날이 지나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다.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도 없어졌고, 그 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농부들을 위로하던 종달새 노래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이런 자연 변화가 원인 같지만, 결코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사는 마을은 합천읍 소재지 가까운 마을이다. 한때는 70여 호에 450여 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재미있게 살았다. 한집 식구가 6~8명씩 되었으니 우선 가정마다 훈기가 돌았고, 사람 사는 맛이 있었다. 마을 전체 농토가 적은 빈촌이라 봄이면 먹을 곡식이 부족하여 보리밥이나 나물죽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집이 많았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따뜻한 봄이 되면 제비꽃, 민들레, 개나리, 진달래꽃 등 온갖 새봄의 꽃들을 보면서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고 기지개를 켜며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요즘,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면서 틈틈이 걷기운동을 겸해 마을을 한 바퀴씩 돌아본다. 골목마다 사람 인기척 없는 빈집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를 서글프게 한다. 서글프게 하는 것이 빈집들만이 아니다. 마을 주변 곳곳에 복숭아, 자두, 배 같은 과수원 꽃들이 아름답게 피었지만, 예전 같이 여름, 가을의 과일 수확을 생각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농부들의 모습도 볼 수가 없다.
마을이 읍 소재지 가까운 거리에 있어 7,80년 대까지만 해도 곳곳에 건설공사나 집 짓는 데 종사하는 사람들이 전세나 월세 집을 구하기 위해 심심찮게 찾아왔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빈집이 차츰 늘어나고 잘 가꾸어 놓은 과수원도 관리할 사람이 없어 방치하는 봄이 되었다. 예전 같이 희망찬 봄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 보지만, 밀물처럼 밀려오는 쓸쓸함을 막을 수가 없다.
봄을 슬프게 하는 것은 이러한 자연의 변화만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신봉하며 국제 질서를 지켜주던 미국이란 나라에서도 집권자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세계질서와 정의를 팽개치고 있고, 거기다가 일부 지역에 전쟁까지 일으키며 자국의 욕심을 채우다 보니, 세계 경제를 요동치게 하고, 전 세계의 인간성을 더욱 사납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정권이 집권한 지 일 년이 지났지만, 정권을 쥔 여당은 국민 화합과 평안은 뒷전인 것 같고, 장기 집권에 혈안이 되어 자기 정파의 입맛에 맞는 법치와 정책에 몰두하면서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반만년의 가난을 물리치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며 온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한강의 기적을 이뤄, 온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 모양의 정치판이 되었는가 싶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의와 불의도 판단하지 못하는 무지막지한 군상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불량사회가 돼 버린 것 같다.
우리나라 정치가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였는지 곰곰이 되돌아본다. 오래전 정치 9단이라는 두 분의 김씨 때부터 우리나라 정치 질서의 단추가 잘못 끼워졌던 것 같다. 두 김씨가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최고의 목표인 대권을 성취한 후, 또 다른 욕망을 이 땅에 심었던 것 같다. 한 김씨는 일인 독재 체제로 국민을 짐승처럼 다스리고 있는 북한에 햇볕 정책이니, 동족이니 통일이니, 온갖 미사여구로 돈을 퍼주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여 우리를 위협하는 호랑이로 만들었고, 또 한 김씨는 지나간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내세우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무리의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어 국가 안위를 약화시키고, 종북 세력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 주어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게 하였다.
그 이후 그들을 추종하던 엉터리 정치꾼들이 모리배 같은 권모술수만 배워 우리나라 정치 수준을 지금같이 저질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지금의 집권당이 된 여당의 모습은 국가의 안위나 국민의 화합은 뒷전이고 다수의 힘으로 온갖 정책을 밀어붙이며 다수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고, 제1야당인 ‘국민의 힘’ 정당 등 야당들 역시 국가와 국민은 뒷전이다. 정치 의욕도, 개념도 없는 정치꾼들이 되어 여당이 아무리 횡포를 부려도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들의 눈치만 살피며 동조하거나 자기 몸보신만 하는 비열하고 나약한 식물 정치꾼 무리로 전락해 버렸다.
다가오는 6.3지방선거는 물론, 다음 총선, 대선에서는 국민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여야 구분 없이 지금같이 전과를 벼슬로 착각하는 오염투성이 정치꾼들은 한 사람도 정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뚜렷한 이념이나 개념도 없이 카멜레온처럼 변신과 배신을 밥 먹듯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철면피들도 모두 정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해야 한다. 젊고 참신한 사람들을 뽑아 새로운 정치 질서를 확립시키고, 새로운 대한민국이 건설되도록 해야 한다.
당당한 소신도, 뚜렷한 이념이나 개념도 없이 권력 앞에 납작 엎드려 있는 엉터리 정치꾼들과 소위 지식인들이란 자들의 비겁하고 불쌍한 모습을 보는 올봄이라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