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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찬의 먼 북소리(6) –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를 생각하며 – 최효찬 작가, 수필가, 문학박사

고향에 다시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은 2008년쯤이다. 고향 집은 방위병 복무를 할 때인 1985년이 마지막이었으니 23년 만이었다. 당시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작가로 인생 2막을 내딛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분주했다. 달리 말하자면 마흔다섯에 이르러서야 고향이 다시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지만 고향에 가도 본가가 수몰되어 고향이 낯설게 느껴졌다. 2014년 집을 짓자 다시 고향을 되찾은 기분이었다.고향에 발걸음이 늘어나면서 관심사도 하나둘 생겼다. 문중 유사를 맡기도 했다. 이웃에 요양차 족손(族孫)이 오셔서 살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입향조 묘각 이야기가 나왔다. 나 또한 족보를 보다 성리에 소재한 삼성재(三城齋)라는 묘각이 궁금하던 차였다. 그 길로 함께 찾아 나섰다. 못골로 가서 동네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묘각의 소재를 알아냈다. 마침 묘각 바로 아랫집에 사시는 분이 먼 외손이었다. 70년대에는 이 재실을 동네 공부방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묘각은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지붕 서까래가 썩어 무너져 내릴 듯이 쇠락해 있었다. 종친들은 철거하자는 의견과 중수하자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묘각은 제 기능을 다했기에 철거해도 무방했다. 철거하는 것은 쉽지만 비용도 만만찮았다. 중수를 하자면 비용 때문에 선뜻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논의 끝에 중수를 하기로 했다. 엉겁결에 중수 유사(有司)를 맡게 되었다.2024년 5월 5일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한여름에는 35도가 넘는 폭염이 한 달째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도 공사를 계속했다. 비용이 늘어나 단톡방에 기부금을 모아야 한다는 취지로 회람을 했다. 기부금은 묘각 현판에 걸려 있던 1958년 공사 때의 우조록(優助錄)을 참고했다. 선조들은 어려운 시절에도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묘각을 지었다. 그 전통 덕분인지 100여 명에 이르는 종인들의 기부금에 힘입어 10월 말에 무사히 공사를 마쳤다. 거액의 기부금을 모금한 것은 의외였다. 삼성재는 옛 사랑방의 고재(古材)로 지은 삼 칸 한옥이었다. 중수를 하면서 방 한 칸을 화장실과 부엌으로 개조했다. 종인들이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사랑방으로 활용되기를 바랐다. 공사를 마무리하던 날, 졸작이지만 기념 시를 지었다.”돌보는 이 없어 방치돼 허물어지던 / 옛 성곽 마을 옛 조상의 꿈자리 / 한마음 한마음 십시일반의 정성 더해 / 소박하게 단장한 지 4개월째 / 상서로운 고졸미(古拙美) 다시 드리우는데 / … 먼 훗날 그 누가 이을까 / 인간사 늘 그렇듯이 / 또 말 타고 오는 이 있을 테지.”나는 책을 읽으면 주요한 인용구들을 메모해 노트북에 저장해 둔다. 이른바 ‘초서(抄書)’ 파일이다. 중국의 마지막 현자로 불린 남회근(南懷瑾, 1918~2012)의 『주역 계사 강의』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메모한 문구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계지자선야(繼之者善也) 성지자성야(成之者性也)”이다. 한번 음이 되었다 한번 양이 되었다 하면서 계속 변화하는 것이 우주 만물의 근본적인 법칙이고 이를 도라고 한다. 그 도를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선이요, 잘 이루는 것이 성, 즉 하늘의 근본 이치라고 갈파한다. 여기에서 도(道)란 형이상학적인 도, 절대 깨달음의 도가 아니라 일상에서 작용하는 도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남회근은 풀이한다.주역 계사전의 이 문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인데, 요즘은 매일 주문처럼 되뇐다. 이 주문으로 건강을 살피고 사회의 형세를 나름대로 분석한다. 음양의 기세를 살피고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한다. 음이 우세한 상황으로 몰리는 것 같으면 의도적으로 양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현재 몸의 상태에서 양의 기세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산책 코스의 난이도를 높인다. 관계에서도 음양의 기세를 살피곤 한다.인간의 역사나 사회, 개인을 막론하고 음양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이를 양적 우세의 상태로 꾸준하게 잘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도이고 이를 잘 유지하는 게 선(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중용이라고 했다. 물론 양적 우세 상태의 균형이 무너지면 도가 무너진다. 쉽게 말하자면 어딘가 탈이 난다. 건강도 음양의 파동이 불규칙하게 널뛰면 균형이 무너지고 이때 적신호가 온다. 이를 무시하면 생명을 잃기도 한다. 달리 말하자면 일상에서의 도(道)란 음양의 균형을 양(陽)의 우세 상태로 지속해 가는 것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개인의 행복도 사회의 지속가능성도 국가의 흥망성쇠도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삼성재는 속절없이 허물어지다 40년 만에 부활했다. 비록 묘각으로서의 기능은 다했어도 후손들이 이를 잘 관리해 나가면 이게 계선(繼善)일 것이다. 나는 아들 방 이름을 ‘계선’으로 지었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덕목으로서의 도란 이렇듯 심오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셈이다.며칠 후 아내와 함께 고향 집에 갈 예정이다. 마당에는 또 풀이 자라 있을 것이다. 조금만 방치하면 마당은 이내 ‘잡초’들의 세상이 된다. 그나마 지난해 자갈을 깔아 어느 정도 막고 있다. 마당 밖의 세상은 여전하다. 지난해부터 기후변화로 난데없이 ‘덩굴’이 세상을 뒤덮으면서 왕초로 군림하고 있다. 이번에 내려가면 얼마나 질서를 교란하고 있는지 흥미진진하게 살펴볼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