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새 국왕 등극을 축하하며
권해조
논설위원
태국의 마하 와치랄 롱꼰 왕세자(64)가 12월 1일 새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1972년 왕세자로 책봉된 지 44년, 푸미폰 국왕 서거 50일 만에 1782년 짜오 프라야 짜끄리(라미 1세)를 시조로 하는 현 짜끄리 왕조 10번째 국왕(라마 10세)으로 등극하였다.
와치랄 롱꼰 왕세자는 12월 1일 국가입법회의(NLA)의장을 만나 국왕추대 제의를 수락하고 ‘나는 모든 태국 국민을 위해 선왕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수락 연설을 했다. 한편 쁘라윳 총리는 이제 태국 국민은 새로운 국왕을 모시게 되었으며, 대관식은 내년 10월 푸미폰 국왕 장례식이 끝난 뒤 치러질 것이라고 하였다. 태국 정부는 새 국왕 공식 명칭은 ‘마하 외치랄롱꼰 버딘드라 데바야와랑꼰 국황폐하’로 칭했다.
새로 등극한 와치랄롱콘 태국국왕은 푸미폰 국왕의 1남 3녀 가운데 둘째로서 10세 때부터 태국군 장교훈련을 받았고, 14세 때 영국유학을 마치고, 호주 왕립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 네 번째 부인과 자녀 7명을 두고 있다. 그러나 1972년 왕세자로 책봉 후 그동안 3차례의 이혼 경력과 복잡한 사생활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과거 탁신정권과 가까웠던 이유로 군부와도 관계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태국국민들은 새 국왕에 인기가 높아 천사의 공주로 불리는 시린톤 공주(61)를 선호하여, 1974년 헌법을 개정하여 여성의 왕위계승 가능성도 열러두었고, 와찌랄롱콘 왕세자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 시린톤에게 섭정을 맡기자는 대안도 있었다. 첫째 공주인 우본랏 라차깐야(65)는 1972년 미국인과 결혼하여 왕위 계승 자격을 상실했고, 막내공주인 출라폰(59)은 화학 박사로 공군장성과 결혼했다가 이혼 상태이다.
그동안 태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라마9세)이 지난 10월 13일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푸미폰 국왕은 즉위한지 1년 만에 숨진 형 아난타 마하돈(라마8세)의 뒤를 이어 1946년 6월 9일 왕위에 올라 70년간을 재위한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왕이었다. 타계한 라마 9세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공중보건학을 공부하던 부친 마히돈 아둔야뎃 왕자의 둘째 아들로 미국에서 출생하여 스위스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로잔대학에서 과학 공부를 하던 중 두 살 연상의 형(라마8세)이 21세 나이에 의문의 총기 사고로 숨지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즉위 직후 삼촌인 랑싯에게 섭정을 맡기고 로잔대학으로 돌아가서 정치와 법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스위스 유학시절 교통사고로 우측 눈을 실명하여 그때 극진히 간호했던 시리낏 왕비와 1950년 4월 결혼하고 5월 공식 대관식을 가졌으며 랑싯이 숨진 1952년부터 친정을 펴왔다.
태국국왕은 실권은 없다. 그러나 헙법상으로 입법, 행정, 사법권을 행사하고 군 통수권을 가지고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영향력은 막강하다. 푸미폰 국왕은 젊은 시절 카메라, 지도, 연필을 들고 전국을 누비며 민생을 직접 챙기는 모습으로 국민적 지지를 듬뿍 받았다. 그리고 군부쿠데타 반복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1988년 왕실재단 로열프로젝트로 막사이상을 수상했고 2006년 유엔에서 제1회 ‘인간개발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를 채택이후 19차례의 쿠데타와 20회의 개헌이 있었을 만큼 근현대사에 굴곡이 많았다. 푸미폰 국왕 재임기간에도 5차례 쿠데타가 발생했으나 푸미폰 국왕의 정당성 인정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2006년 서민적 인기가 높았던 탁신 친나왓 총리와 2014년 탁신의 여동생 잉락 총리를 하야시키면서 군부의 손을 들어주는 등 인기영합주의에서 태국을 구제하려는 용단의 시각과 민주주의 훼손이란 의견도 많다.
태국은 흔히 자유의 나라 미소(微笑)의 나라, 아름다운 사원의 나라로 부르며, 수도 방콕은 동남아의 교통중심지로 천사의 도시( 꾸룽텝), 물의 도시, 동양의 베니스로 불린다. 태국은 광활한 평야에는 곡식이, 산에서는 온갖 과일이, 바다와 강에서는 고기가 풍족한 축복 받은 나라다. 국민들도 불교의 영향인지 성을 낼 줄 모르고 서두르지 않고 변함없는 강물의 느긋한 흐름처럼 넉넉한 삶의 여유를 갖고 숙명적인 삶을 누리며 열대의 정열과 겸손이 어우러진 나라이다. 1951년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1956년 나온 영화 ‘왕과 나’의 장면처럼 낭만적인 나라다. 특히 영화 ‘왕과 나’는 19세기 시암(현재태국) 왕실에서 가정교사로 일했던 애나 리오노언스의 회고록을 소재로 마거릿 랜던이 영국출신 젊은 미망인 가정교사 애나의 러브스토리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으며 실제 모델이 라마 4세이다.
태국은 우리나라와 1949년 10월 외교관계를 맺고 1960년부터 상주 대사관을 운용하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한국전쟁 때 쌀 4만 톤과 태국군 1개 대대를 미국다음으로 참전시켰으며 연인원 10,315명이 참전하여 129명의 전사자와 1,139명의 부상자를 낸 혈맹국가이다. 박대통령도 푸미폰 국왕 서거 다음날인 10월14일 성명을 발표하여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필자는 1991년부터 94년까지 3년간 주 태국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푸미폰 국왕과 왕비, 새 국왕과 가족들과도 여러 번 만났다. 푸미폰 국왕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새 국왕의 등극을 축하하며 한태(韓泰) 양국관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