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고시래에 대한 설화(說話) 77

진대수
풍수가 겸 수필가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인 진목대사는 자신의 출가로 후손이 없어 어머님 묘소관리를 할 수 없으니, 들에 나가 음식을 먹기 전 ‘고시래’하면서 음식을 조금 주위에 뿌리게 해 제사를 대신하였다는 거다. 이렇게 ‘진언’으로 제사지내는 방편을 삼음으로써 자신의 어머니를 후세 천 년을 돌봐 줄 것이라 하였다. 제주 고씨(高氏)인 어머님께 예(禮)를 드린다는 데서 ‘고시래’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화는 고씨(高氏) 성을 가진 예쁘고 착한 처녀가 있었다. 하루는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데 탐스럽게 생긴 복숭아가 떠 내려와 건져서 먹었다. 그 후로 잉태하여 배가 불러오더니 아들을 낳았다. 처녀의 부모가 망측한 일이라 하여 어린아이를 갖다버렸다. 엄동설한이라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갑자기 까마귀 수천 마리가 무리를 지어 날아와서는 날개를 서로 이어 어린아이를 덮어주고 먹이를 구해 다 주어 수십 일이 지나도 어린아이가 죽지 않았다. 이를 보고 처녀의 부모가 이상히 여겨 다시 데려다 길렀다.
복숭아를 먹고 낳은 아들이라 이름을 도손(桃孫)이라 하였다. 도손은 자라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중국에 건너가 도통한 스승으로부터 천문과 지리와 음양의 비법을 배워 풍수지리에 통달하게 되었다. 그가 귀국하자 시집도 못 가고 혼자 산 어머니가 죽었다. 도손은 명당을 찾아 어머니를 묻기로 했다. 그러나 다른 자식도 없고 자신도 중이 되었기 때문에 발복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면서 어머니를 산에 묻지 않고 들 한가운데에 묻었다. 사람들은 풍수지리에 통달한 사람이 어머니를 산에 묻지 않고 들에 다 묻었다고 욕하였다. 그러나 도손은 ‘여기가 배고프지 않은 명당이다’. 하며 그대로 두었다.
농사철에 근처의 농부가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을 때 제사를 지내주는 자손도 없는 묘를 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농부는 들에서 일하다가 밥을 먹을 때면 고씨네 하면서 그 여자의 성을 부르며 밥 한술을 던져주었다. 그런데 그 해에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다른 집들은 농사가 다 망쳤는데, 그 농부의 농사만 풍년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고씨네 무덤에 적선을 했기 때문이라며, 그 다음부터는 서로 묘에 음식을 갖다 주며 고씨네하고 불렀다.
또 다른 설화는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이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자손이 없어 늘 걱정하면서도 가난한 이웃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면서 살다가 끝내 자손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 후 도움을 받은 이웃사람들이 제사는 못 지내어 줄망정 영혼이 굶주리게 할 수 없다면서 함께 나누는 뜻으로 음식을 골고루 조금씩 떼어서 던져 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고씨네가 고시래로 변한 말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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