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해인사 백련암과 성철스님(2)

이병생
합천문화원향토사 연구소장

매 결제철마다 대중이 함께 참여하는 칠일칠야 용맹정진은 철저한 수행정신을 진작시키고 조계문화의 선풍을 드날리게 하는 스님의 매서운 가풍을 이루었다. 스님께서는 선종의 바른 이념이 육조혜능의 돈오돈수 사상에 있음을 밝히시고 8백년 동안 한국선종을 물들여온 보조의 돈오참수 설을 논파하여 종지(宗指)를 바로세우시니 이는 캄캄한 밤중에 등불을 밝힘과 같았고, 수행납승과 종도들에게 바른 종취를 고취시켜 활발발(活鱍鱍)한 조사기풍을 회복하신 것이다. 또한 스님은 평생 계율을 엄격히 하셨고, 누구든 불전에 3,000배를 하지 않으면 화두를 주지 않고 친견을 허락지 않았으며 평생 재물을 멀리 하셨다.
스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직접 불공염불을 해주지 않았으며각자 스스로 참선정진과 참회기도를 하고 그 공덕은 남에게 베풀라고 이르셨다. 젊었을 때 십수년간 생식 또는 벽곡(僻穀)으로 지냈으며, 이후 40여년간 무염소식으로 일체간식하지 않으시고 거처하는 건물에 단청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출가하여 처음으로 삭발하고 말년에 20여년을 주석하시던 해인사 퇴설당에서 1993년 11월4일 새벽에 임종계를 쓰시었다.

生平欺誑男女群(생평기광남여군)하니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라
活陷阿鼻 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이여 一輪吐紅 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이로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잠시 좌정하시다가 시자들에게 참선 잘하라는 당부를 하고 앉은채로 열반에 드시니 세수는 82세요. 법랍은 58세로 그 모습이 거룩하고 또 거룩하셨다.
7일 장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슬퍼하였고, 그 기간 동안 퇴설당과 백년암 뒷산에 일곱 차례나 방광((放光)을 하시니, 그 이적(異蹟)에 사부대중은 모두 놀라워하고 감격 하였다.
다비식에는 30여만 명이 운집하여 해인사 30리 밖까지 인산인해를 이루니 그 장엄함은 이루다 말 할 수 없었다.
다비 후 일백여 과의 사리(舍利)를 얻어 7제 동안 친견 법회를 열자 종교를 초월하여 백여만 명의 대중이 모여들어 찬탄하였으니, 이는 불교사에 드문 일이었다. 큰스님의 무소유와 절약의 정신은 바로 이 시대 부처의 모습이었다. “자기를 바로보라”, “남을 위해 기도하라”, “일체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라”이르시던 그 참되고 소박한 가르침은 오늘도 가야산의 메아리가 되어 영원에서 영원으로 울리고 있다. 스님의 사리탑은 운양대에 건립되어 있는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기본형으로 하여 우라나라 전통 부도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조형언어로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가운데 구는 완전한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상징하고, 살짝 등을 맞대고 있는 반구는 활짝 핀 연꽃을 표현하며, 크기가 다른 정사각형의 3단 기단은 계· 정· 혜 삼학과 수행과정을 의미한다. 사리탑을 둘러싸고 있는 참배 대는 앞쪽에서 뒤쪽으로 가면서 서서히 높아졌다가 낮아지는데 이것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흐르는 시간의 무한성을 상징한다.
스님께서 늘 말씀하신 “자기를 바로보라”는 가르침이 살아있는 선(禪)의 공간이다. 이 사리탑은 설치미술가 최재은씨가 설계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