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송년회 유감

정병수
쌍백초 총동창회장

오래전 60년대 시골 초등학교 시절엔 볼 것도 구경할 곳도 별로 없었다. 텔레비전도 없었고, 영화도 어쩌다 가설극장에서나 볼 수 있었다. 놀이라곤 동네 주변에서 숨박꼭질이나 땅따먹기를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는 단순한 어린이들만의 체육대회가 아니라 부모님은 물론 온 식구가 참석하는 면민 축제가 되는 것이었다.
소풍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경치 좋은 곳이나 역사적 유래가 있는 곳을 찾아 평소에는 엄두도 못내는 사이다며 김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단골 메뉴인 보물찾기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제발 비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라며 매일같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빨리 소풍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니 그때의 하루하루는 느리디느리고 지루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환갑이 지난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와는 전혀 다른 심정이 되어있는 것이었다. 지인들과 만나면 으레 건강 운운이 기본이고, 살아가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며 아쉬워한다. 나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180년만의 무더위라며 힘들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가을은 또 왔는지도 모르게 인사도 없이 가버리고, 벌써 찬바람이 귓전을 때리는 12월이 된 것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이 마지막 잎새처럼 굳건히 버텨주면 좋으련만 가야만하는 하루하루를 이겨내지 못할 것이고, 벽에 걸어놓았던 달력도 곧 새 달력으로 바꿔 걸릴 것을 생각하면 괜스리 쓸쓸해진다. ‘콩닥콩닥’ 가슴 뛰며 설레던 그 연둣빛 기대감과 희망이 넘쳐나던 해맑던 그때는 어디에 가있는 것일까?
“이제 송년회(送年會) 몇 번 다니다보면 올해도 금방 가겠네.”
오늘도 가는 세월이 빠르다며 나는 혼자 말로 중얼거려 본다. 이래서 송년회란 이름으로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때로는 반가워하고, 아쉬워하고, 때로는 축하하고, 위로하는가 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괴로웠던 한해의 삶을 모두 잊자는 뜻의 망년회(忘年會)라고 불리어졌던 것에 비하면, 그동안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되고 성숙해진 건 틀림없다.
그러나 송년회든 망년회든 음식과 술은 기본이고, 여기에 조미료 같이 노래가 있는 여흥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평소 술을 못 마셔도 송년모임에서는 으레 한두 잔은 마셔야하고, 또 잘 부르든 못 부르든 한 두 곡 정도의 노래도 필수이다. 이는 예부터 가무(歌舞)를 좋아하는 우리민족의 기질에서 연유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선 왠지 작아지고 때로는 슬프기까지 하다. 아니 몹시 유감이다. 왜냐하면 내 의지와 노력과 상관없이 술엔 약하고 노래는 평생 음치이기 때문이다. 겉보기로는 막걸리 서너 사발쯤은 가볍게 입가심할 것 같은데, 몸이 감당을 못해내니 내 스스로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왜 두주불사의 아버님을 닮지 않고, 막걸리 냄새만 맡아도 취하셨다는 어머님의 체질을 유산으로 받았다고 원망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리고 타고난 노래꾼들이야 노래방 마이크를 놓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처럼 타고난 음치는 마이크 그 자체가 두려울 뿐인데, 그런 나를 ‘난 노래 못하는데…….’라고 하면 ‘그러냐?’고 받아주면 좋으련만 집요하게 강요해놓고는, 비지땀을 흘리며 한 곡 겨우 부르고 난 내게 하는 소리이란 게 “방금 누가 노래했어? 그게 소음이지, 노래야?” 이쯤 되면 내 기분은 여지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사실 12월이 가면 올해가 간다고 하는데, 새해라고 해서 오늘과는 다른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가는 세월이 아쉬워, 아니 한 살 더 늘어가는 나이가 왠지 반갑지 않아 송년회로 보상받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정한 송년회는 지나온 한 해를 반추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바쁜 일상으로 자칫 잊을 수 있는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아니면 음악이 흐르는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부드럽고 달콤한 와인과 함께 詩나 수필을 낭독하며 그 문학적 감동에 가슴 뛰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땐 못 먹는 술이라도 내가 먼저 권할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우리의 생각을 더 깊게 하는 송년회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