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어 짜며 (1)
문경자
논설위원
아버지의 부탁으로 내 중매를 한 고모님은 “신랑감이 얌전하여 평생 속을 썩일 일이 없으며, 네가 백마디 하면 한마디 할까 말까 하는 성격으로 보이더라”라고 하였다. 맞선 보는 자리에서 처음 본 나에게 한마디로 간단한 질문을 했다. “서울에 올라 온 지는 몇 년 되었어요?”라며 물어 본 기억 밖에 나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은 그런 신랑감을 내 의견에 상관없이 선뜻 결정을 해버렸다. 서둘러 시집을 가라며 서울에서 아지랑이가 가물거리던 4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30대 아들 둘이 장가 갈 나이가 되었으니 세월도 많이 지났다.
서울에서 산골로 시집을 갔던 나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였다. 고모님의 말씀이 조금씩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새신랑은 밤이면 마실 가서 텔레비전을 보고 온다며 나에게는 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 밤중에 돌아와 말없이 등을 돌리고 자는 모습은 무관심 그 자체였다. 나는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일어나요”하며 등을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더 세게 힘을 주어 깨웠다. 고모가 점쟁이처럼 딱 맞혔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적중하였다.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으니 부부싸움은 어림도 없었다. 그날 밤 굴뚝이 서있는 곳에 숨어 울었다. 내가 보이지 않자 가족들이 찾아 나섰다. 남편이 “빨리 일어나요”하며 데리고 가니 모두 화살을 나에게 쏘았다. 시집이 무섭기는 무서웠다. 화가 치밀어 한마디 하였더니 “그만 자요”하며 등을 홱 돌렸다. 한숨을 쉬며 꽃이 수 놓인 베개를 고쳐 베고는 잠을 잤다.
시골에서 살기에는 아이들 장래도 그렇고 하니 친정 아버지는 서울에서 살기를 원했다.
서울에 취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시부모들은 “잘됐다”라며 전세금을 마련해 주었다. 돌을 지낸 첫아들을 업고 서울로 왔다.
30대 초반의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회사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나는 친정을 들락거렸다. 아버지는 “이서방은 회사에 잘 다니고 있지! 일을 잘 한다고 직장 상사가 칭찬을 하더구나”하며 늦게 들어오는지 살피고, 왜 늦었는지 이유를 알아 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그 말을 되새기며 남편의 행동을 주시하였다.
어느 날 남편은 집으로 돌아 왔는데 얼굴이 환하게 보였지만 말 한 마디 없이 잠을 자는 숫자가 늘어만 같다. 여자의 직감이 꼬리를 내 밀었다. 하얀 와이셔츠를 벗으며 매주 사는 복권에 당첨이 된 것보다 더 기분 좋게 흥얼거렸다. ‘저 모습이야!’발을 씻고 들어와 아들을 보고 웃으며 “혁아! 잘 놀았나”라며 웃는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미심쩍게 보였다. 평소에는 저렇게 웃지도 않는데 이상했다.
시골에서 쭈~욱 자란 그는 경상도 사투리만 듣다가 서울말씨를 쓰는 아가씨들을 보고는 뿅 가버린 것은 아닌가! 여자의 좁은 소견머리가 자꾸만 채찍질을 하였다. ‘두고 보자’라며 나는 퇴근길에 아들을 업고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제시간에 딱딱 맞게 퇴근을 하니 의심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그것도 무의미 하였다.
며칠 뒤였다. 반소매 흰 와이셔츠를 벗어 놓고 회사로 출근을 하였다. 화가 나서 옷을 꾸겼다. 목이 닿은 곳에 때를 빡빡 문질렀다. 비틀어 짜며 화풀이를 했다. 속이 시원하여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호주머니 쪽에 담배 가루가 있어 그것을 꺼내기 위해 뒤집으려는데 ‘이건 또 뭐지. 립스틱 자국 아니야!’ 호주머니 박음질 선에 묻어있었다. 물에 젖어 더욱 선명했다. 이상한 그림들이 눈앞에서 나비처럼 춤을 추었다. 어떻게 해야 증명을 할 수가 있을까 내심 혼자 고민을 하였다.
집에 온 남편에게 보여주자는 심사에서 그대로 빨랫줄에 널어 말렸다. 머리 속은 쑥대밭이 되었다. 드디어 집에 올 시간이겠다. 방문 여는 소리에 머리가 팍 하고 쪼개지듯이 아팠다. 저녁상을 물렸다. 첫 마디가 중요한데 말 주변도 없는 내가 뭐라고 하지. 눈웃음을 치며 여우처럼 변해야만 한다. 누워있는 남편에게 “저어기요. 와이셔츠 호주머니 쪽에 여자립스틱이 묻어있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초지종 말을 해보세요.” 남편은 나에게 존댓말을 하기 때문에 싸움을 할 때도 그렇게 말을 해야 했다.
시집살이에서부터 남편이 잘 못한 것을 꼬집으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는 것을 감안하여 더 슬프게 울었다. 슬며시 몸을 뒤척이더니 “인주(印朱)가 묻었다”는 한 마디만 던지고는 잠을 자는 척했다. 너는 떠들고 나는 잔다는 식이었다. 시어머니는 평생 소원이 시아버지와 부부싸움을 한번 해보는 것이라 했다. 지금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고모는 남편들이 자는 척하면서도 다 듣고 있으니 할 말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밤12시가 지나도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속이 터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