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산책
임장섭
前합천교육장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잠이 적어진다고 했던가! 최근에 나는 부쩍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때는 저녁 밥 숟가락을 놓고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에 푹 빠진다. 자다 멀고 12씨쯤에 일어나 운동하려 강변 둔치에 나가는가 하면 1시, 2시에도 나가기도 한다. 집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는가? 처음에는 집사람 잔소리를 듣기도 하였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둔다.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 강가에 나가보면 아무도 없다. 어느 날에는 아름다운 별빛이 나를 맞이하고 흐르는 강물이 나를 반긴다. 가로등도 지쳐 조는 날에 지금껏 살아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유년기에 부모님을 따라 친척집에 간일이며, 시골 동네까지 찾아온 아이스케키 장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마늘 접을 부모님 몰래 다주고 바꿔 먹은 일이며, 소먹이며 꼴을 베다 말고 각기 한주먹씩 놓고는 낫 꽂기를 하던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제법이었다. 못에 실을 매어 신발 걸기며 땅따먹기, 자치기 등은 대단한 놀이었다. 장날 어머니를 따라 가고 싶은 마음에 몰래몰래 따라 가다가 들켜 혼만 나고 돌아온 날이 새삼스럽다. 어린 나이에 장에 가는 날은 가슴 설레고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그 시절 어머니는 머리감아 빗고 장에 나서면 참으로 예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땅을 안고 걸으시는 꼬부랑 할머니시다.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나왔는데 아버지가 통 나서지를 않아 입학식에 가자고 졸랐을 때 “거리도 멀고, 몸도 약하니 내년에 보내주마.”고 하시는 말씀에 나는 대성통곡을 했었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한 여선생님이 하도 예쁘게 보여 교무실에 얼굴을 훔쳐보다 선생님께 야단도 맞았었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 아닌 삿갓을 쓰고 학교에 가곤 했는데 하굣길에는 심심함을 달랠 길 없어 비포장 신작로의 움푹 파인 물에 고인 곳에 팽이 돌리는 쾌감에 빠져 삿갓마다 머리가 성한 곳이 없었다.
그때는 가끔 용의 검사를 했는데 주로 이와 손이 대상이었다. 칫솔이 어떻게 생긴 것도 모르던 내가 이를 닦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고 손등도 때가 몇 겹 쌓였는데 갑자기 씻는다고 해도 오히려 때만 부풀려 오른 것 같았다. 선생님은 검사하신다면서 개울가에 우리를 데리고 가시고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검사를 받게 되는데 한 번도 제대로 통과된 적이 없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자취하며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두 서리를 할 때 주인에게 발각될까 간이 콩알만 했었다. 자취시절에 앞집에 있던 상우가 시래기 국을 가끔씩 가져오곤 했는데 지금도 그 친구가 그립다. 고등학교는 서울에 친척이 있어 지원하게 되었는데 합천에서 대구까지 몇 시간을 소변을 참고 가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대구에서 나를 서울로 데리고 가는 분이 중국식당에 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처음 먹어본 것이라 그런지 맛이 기가 막혔다. 지금도 그때의 맛을 못 잊어 가끔 맨 자장을 사먹곤 한다. 열차를 타고 가는데 소변이 엄청 마려웠지만 화장실이 어디 있는 줄 몰라 참고 참는데 배가 아팠다. 합천에서 용산역까지 참고 가서, 서대문 만리동 집에 가서야 소변을 봤을 때 아! 그때의 양과 시원함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내겐 방광염이 생겨 어디를 가든 차가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 가는 것은 과히 기계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한밤중 황강변을 걷다보면 별의별 지나온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에ㄹ 아련히 떠오른다.
아! 밤안개 아름답게 피어오르고 인적 고요한 밤에 끝도 시작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에 강 건너 개 짖는 소리가 지난 일들의 파노라마에 종지부를 찍는다.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한밤중이나 새벽녘 황강 가에서 나는 너무도 오래되어 가물가물한 추억을 반추하며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 할 수 있어 좋고 언젠가부터 내가 마치 도깨비가 되어 인간 세상을 몰래 돌아다니며 꿈결처럼 산책하는 즐거운 습관 하나가 생기게 되었다.